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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국민들은 국회의원에게 문자를 보내는가
    Feature/Politics 2017. 5. 27.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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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 이낙연 후보자에 대한 검증만큼 뜨거운 이슈는 '문자 폭탄'이었다. 청문회에 참여한 청문 위원들에게 일부 여당 지지자들이 몇백여 건의 문자가 쏟아지면서 야당 소속 위원들이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관련 기사 : [TF프리즘] 딸사진 보내며 "밤길 조심하라"…野, 문자폭탄에 섬뜩) 일각에서는 '문자 테러', '문자 폭탄'이라며 이 사태를 비난하고 나섰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정치 참여 행위'라고 맞서기 시작했다. 

    당연히 정도를 지나친 욕설이나 협박은 잘못된 행위이다. 심각한 경우 법적 책임까지 묻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자 폭탄'의 내용과 수에 분노하기 이전에 왜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는지를 되짚어 볼 필요는 있다.

    사진 출처 : 중앙일보

    작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며 국민들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정치로의 직접적인 참여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에 주저하던 제1야당과 새누리당 비박계를 결국 탄핵안 발의와 탄핵 찬성에 몰아 넣은 것은 다름아닌 국민의 열망이었다. 2016년 12월 2일 발의될 것으로 기대했던 탄핵안이 비박계와 야당들간의 줄다리기로 인해 무산되자 국민들은 보란듯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12월 3일 광화문에서 열린 제 6차 촛불 집회에는 역대 최다 인원인 232만명이 참가하며 탄핵안의 빠른 가결을 촉구했다.

    YTN 방송화면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 일반인이 공개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의 연락처와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공개한 탄핵 반대 의원 명단이 맞물리며 국민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탄핵에 찬성하라는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문자와 한겨울에도 거리에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국민들의 힘으로, 결국 120석을 가지고 있던 새누리당에서 최소 50여 명의 의원들이 탄핵안에 찬성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은 국회 가결을 거쳐 헌법재판소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탄핵안 가결 이후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도 국민들은 큰 역할을 해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청문회를 보며 각종 자료들을 취합해 청문 위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료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결국 어느 네티즌의 제보를 받은 박영선 의원의 질의를 통해 최순실을 끝까지 모른다고 잡아 떼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서 "최순실을 몰랐다고는 할 수 없다."는 답변을 이끌어 내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벌어진 19대 대선에서도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 참여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특히 선관위에서 일반 유권자들의 후보자 지지 활동에 걸려 있던 여러 장애물들을 치워주기 시작하면서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다. SNS를 통한 공개적인 지지가 이어졌고, 심지어 선거 당일 투표소 앞에서 특정 후보나 기호를 연상시키는 제스처를 취하고 인증샷을 찍을 수 있게 함으로써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손가락을 펼친 유권자들의 인증샷이 넘쳐 났다. 80%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20년만의 최고치를 기록한 투표율만 보아도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얼마나 뜨거웠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된 정치권 대격변의 주인은 그 어떤 정치인이나 정당도 아닌 국민이었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국민이 획득하게된 정치효능감을 바탕으로 국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는 더욱 높아져만 가는데, 민주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 그 중에서도 가장 사이즈가 큰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나니 정치 참여의 활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이 멱살을 잡고 끌고 가다시피 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로 인해 치뤄진 조기 대선에서 세워진 정부인 만큼, 그 어떤 정부보다 국민들의 지분이 가장 큰 정부라는 점 역시 중요하게 작용한다.

    사진 출처 : 서울신문

    결국 마땅한 활로를 찾지 못한 정치로의 참여의 열기가 '문자 폭탄'이라 칭해지는 행위로 연결되는 것이다. 사실 조직적으로 문자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면, 보내는 사람 한 명은 많이 보내봐야 열몇 통 보내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문자를 받는 국회의원 입장에선 일종의 폭탄 투하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단순히 문자의 수에 집착해 문자가 많이 들어와서 화가 난다기보다,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문자를 보내고 있느냐에 방점을 찍고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문자 발송 행위가 언제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이 허구헌날 먹고 노는 것 같아보이지만, 하는 일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량의 문자메시지는 일종의 업무 방해 행위가 될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국민들의 정치 참여 열기를 좀 더 정제된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창구를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적 견해를 덧붙이자면 이러한 정치 참여 열기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것 중 하나로 노동 조합 조직률을 높이는 방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노동 조합은 단순히 기업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를 조율하는 것 뿐 아니라 노동자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북유럽의 노조 조직률이 70~80%선을 왔다갔다 하는 데에 비해, 우리 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선에서 몇 년째 요지부동이다. 70% 이상의 노동자가 노조에 가입해 있다면 노동 조합은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고, 국민들은 굳이 국회의원들에게 문자를 보내지 않고도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자신이 속한 조합을 통해 정치권에 전달할 수 있는 창구를 얻게 된다.

    물론 시민 단체에 후원을 하거나 정당의 당원이 되어 목소리를 내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노조 조직률이 낮은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으로서는 오히려 이 방향이 더 효율적인 방법일 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조의 조직률이 높아진다면, 행정부와 국회 모두 노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무조건 정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국민들의 높아진 정치 참여 열기를 욕설과 협박이 섞인 문자가 아니라 정제된 방식으로 들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노조의 조직률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노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을 얻게 될 수 있다는 면에서도 그렇다. 현재의 정부가 과거 그 어떤 정부들보다 노동자 친화적이라고 생각하기에, 덧붙여보는 견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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