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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를 복제해서 얻을 수 있는 것
    Feature/Politics 2017. 6. 14.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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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탄핵된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국가 전체를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 사이 대통령이었던 박근혜는 헌법재판소로부터 파면되어 일반인이 되었고, 결국 뇌물죄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된 채 재판을 받고 있다. 이렇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이 정치권을 떠나 사법부의 심판대에 오른 이 시점에, 인터넷에는 한 장의 괴문서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바로 '박근혜 복제인간설'이다.

    SNS에 돌고 있는 '박근혜 복제 인간' 문서

    이 충격적인 문서의 내용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는 '도사ㆍ신세계'라는 집단에 의해 1989년 살해당했으며, 이 '도사ㆍ신세계'라는 집단은 박근혜의 복제 인간 1호를 만들어 긴 시간 박근혜의 행세를 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도사ㆍ신세계'는 그 복제 인간 1호도 한나라당 총재이던 시절에 살해하고 2호를 다시 내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기득권층 사이에서 박근혜가 복제 인간이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도사ㆍ신세계'가 스스로 꾸며낸 '최순실 게이트'라는 자작극을 통해 복제 인간 2호를 탄핵시켜 구치소에 집어 넣었다는 이야기다. 이들은 그 근거로 2002년의 박근혜와 2017년의 박근혜의 외모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주류 언론은 이것을 박근혜가 꾸준히 미용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는데 활용했지만 이 문서는 이것이 두 사람이 다른 존재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tvN 'SNL Korea'의 한 장면. 실제 복제 인간은 아니다.

    이 충격적인 문서의 출처는 박사모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박사모가 워낙 폐쇄적으로 움직이고 현재는 활동도 많이 줄어든 상태이기 때문에 이 문서의 출처가 박사모라는 말이 사실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물론 박사모에서 시작된 문서라 하더라도 박사모 회원 중에서도 이 문서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조작설'이 박사모를 위시한 친박 단체나 일부 정치인들 입에서 나오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복제 인간임을 감추려고 최순실 게이트를 조작했다.'는 얘기보다는 '야당의 음모로 최순실 게이트가 조작됐다.'는 쪽이 훨씬 이해하기도 쉽고 더 현실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문서를 만든 사람은 왜 박근혜가 복제 인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일까? 저런 주장을 함으로써 얻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 직후 타임지의 표지. '독재자의 딸'이라는 문장으로 박근혜를 수식하고 있다.

    이는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와 관련이 없지 않다. 모두가 알고 있듯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감은 상당 부분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존경하고 추종하는 국민들은 상당수 존재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정치판에 뛰어듬과 동시에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박근혜 지지라는 구체적인 방식으로 표출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정치인 박근혜는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정치인으로서 어떤 능력을 발휘했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가 국회의원으로 15년간 있으면서 대표 발의한 법안은 15건에 불과하다. 거의 1년에 한 건인 셈인데, 18대 국회의원들이 1년에 평균 9건의 법안을 발의한 것에 비하면 10%를 넘는 수준이다.

    박근혜는 독립된 한 명의 정치인이기보다는 박정희의 딸이라는 선전용 이미지였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철에 내세우는 사상적 가치-그것도 본인이 아닌 아버지 박정희에게 기댄 가치-를 제외하면 정치인으로서는 거의 무능했다는 반증이다. 그런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근혜의 승리가 아니라 박정희의 승리라는 평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박정희의 현신이라 할 수 있는 박근혜가 불통과 무능의 정치를 일삼다가 결국 부패로 탄핵까지 당하고 구속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때문에 박근혜의 몰락은 박근혜 한 사람의 몰락이 아니라 박정희의 몰락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며 탄핵이 이뤄진 수많은 기간 동안 "박정희 신화가 드디어 몰락했다."는 평가는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여러 언론에서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박근혜 복제 인간설'은 박근혜를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박정희의 몰락만큼은 막고 싶은 마지막 발버둥이라 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박정희'로서 존재했던 박근혜가 사실은 진짜가 아니라는 주장을 통해 박근혜에게 투영한 박정희의 이미지를 분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명이다. 지금 부패를 저질러 탄핵된 박근혜는 진짜가 아니며, 때문에 박정희 신화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애달픈 외침인 셈이다.

    '박근혜 복제 인간 설'에 대해 일각에서는 "드디어 갈 데까지 갔다."는 식의 비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제 인간설'은 너무 허무맹랑한 느낌이긴 하지만, 친박 단체에서 꾸준히 이런 류의 비합리적 음모론을 제기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그저 비웃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런 사람들도 함께 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임을 염두에 두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언젠가 박근혜가 복제 인간이라고 믿는 사람과 부딪히고 대화를 나눠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그 때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사회는 개인들이 모여 구성하는 것이며, 그 사회 내에 불완전한 부분이 생기면 그것이 전체의 불행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박근혜가 진짜 복제 인간이라면 우리는 곧 '도사ㆍ신세계'에게 지배당할테니 그런 걱정은 필요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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