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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제에 대한 단상
    Feature/Politics 2017. 5. 1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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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2016년 가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화되며 시작된 정치적 격동기의 한 챕터가 마무리되었다고 느낀다. 물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오랜 시간 누적되어 온 한국 사회의 비정상적인 면모들을 바로 잡아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앞으로의 과정이 너무나 험난해보이지만, 국민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지금보다 나은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기를 기원하고, 또 응원하는 바이다.

    JTBC 방송 화면 캡쳐

    다만 이번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대통령 선거 체제의 취약점과 그 해결 방안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결선 투표제의 도입이다. 결선 투표제의 방식이야 정하기 나름이겠지만, 일반적으로 결선 투표제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넘지 못하는 후보가 나왔을 경우 1위 후보와 2위 후보가 결선 투표제를 펼치는 방식을 이야기한다. 사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실질적으로 양당 체제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결선 투표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했다. 소수 의석을 차지하는 진보 정당들이 있었지만, 이들이 완주한다고 해서 유의미한 득표를 한 적이 없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단일화를 통해 민주당 계열의 정당을 지지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정치 지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국민의당이라는 제 3당이 탄생했으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탄핵을 찬성했던 보수 세력이 새누리당을 탈당해 만든 바른정당, 심지어 친박 집회의 지원에 힘입어 탄생하고 조원진 의원을 영입하는 데에 성공한 새누리당까지 생겼다. 꾸준히 소수 정당의 자리를 지켜온 정의당까지 합치면 무려 원내에 6개의 정당이 존재하는 셈이다.

    결국 3당 합당 이후 꾸준히 유지되어온 양강 간의 1대1 구도가 완전히 깨져버린 이번 선거에서 정치권과 유권자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안에 떨어야 했다. 우선 지역과 세대 구분에 의해 쉽게 결과를 예측해왔던 정치권은 이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끊임없이 단일화를 의제로 던졌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가장 참혹한 사태는 바른정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 및 홍준표 후보 지지 선언이었다. 좌파 정권의 수립을 막겠다는 허울뿐인 명분 아래, 어떻게든 양강 구도를 재현해 처음 느껴보는 불안함을 떨쳐보려는 애처로운 몸부림이었다고 생각한다. 후보나 지도부가 꾸준히 거부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국민의당 일부에서는 다른 당과의 단일화에 대한 물밑 접촉이 암암리에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유권자들의 불안은 더 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자 위협을 느낀 문재인 후보의 지지자들 중 일부에서 문재인 후보와 비슷한 진보 성향의 심상정 후보를 찍는 것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의 말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정치 홍대병'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며 심상정 후보의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모습은 민주당 후보의 지지자들 답지 않게 매우 비민주적이었다. 이 역시 양강 구도로 깔끔하게 그림을 만들어 불안함을 떨치고 싶어했던 발버둥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몸부림이 다음 대선에도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20대 총선을 통해 제 3당이 된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꾸준히 결선 투표제의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는 단일화라는 명분 아래 더불어민주당이나 새누리당 중 한 쪽에 자신이 가진 기회를 내주어야 하는 사태를 막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제 이 열망은 바른정당과 정의당으로까지 번졌을 것이다. 대통령 선거라는 국가 단위의 큰 선거에서 각자 자신의 정당이 가진 가치를 내보이고 국민의 선택을 받으며, 그 수치를 기반으로 앞으로 정치적 기반을 넓혀 나가고 싶어하는 것은 30석 안팎의 정당이나, 10석이 채 되지 않은 정당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 전 대표의 결선투표제 도입 주장은 개헌이라는 벽에 가로막혔었다. 안철수 전 대표는 개헌없이 입법만으로 가능하다고 했지만, 일부 헌법학자들은 헌법 제67조 제2항 "제 1항의 선거(대통령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 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는 조항을 바꾸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도 현재로서는 돌파구가 생겼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개헌을 하겠다며 2018년 지방 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 투표를 붙이겠다고 공약을 한 상태이다. 개헌의 대상을 결정하는 논의의 테이블에 결선 투표제를 올려 놓지 못할 이유는 없다. 만약 대선에서 결선투표가 도입된다면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심지어 1석 뿐인 새누리당까지 단일화에 대한 위협없이 자신들의 정당이 내거는 가치를 대선에서 유권자들에게 당당하게 선보이고 그를 통해 끝까지 완주하며 표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글이 이렇게 끝나면 참 좋았을 것이다. 대선 전에 이 글을 쓰게 되면 이렇게 끝맺으리라고 다짐했었는데 사정이 달라졌다. 모든 유권자들이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적 가치와 정당이 내거는 공약을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후 투표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주장이었다. 그러나 19대 대선 결과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가 국민의당의 안철수 후보를 꺾고 득표율 2위에 오르는 사태를 본다면 아직 그런 세상이 오기에는 이른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헌정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에 분명한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의 후보가 오히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TV 토론이나 선거 유세, 언론 인터뷰 등에서 각종 혐오 발언을 쏟아냈음에도 2위를 한 현상에 대한 분석은 어렵지 않다. 여전히 비합리적 판단을 앞세운 지역 구도, 근거 없는 색깔론 등이 유권자들에게 유효하며 그 효과는 대통령 탄핵의 책임이 있는 정당을 대선에서 2위로 만들어 줄 만큼 힘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결선 투표제가 도입되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정치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19대 대선을 통해 적나라하게 마주한 느낌이라 기분이 상당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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