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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넛(Black Nut), 갈 곳 잃은 오발탄
    Feature/Entertainment 2017. 4. 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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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오래전부터 힙합을 들어왔다는 이유로 '쇼미더머니' 이후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친구들이 종종 나에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을 때가 있다. 몇 년전 어느 술자리, 그날의 질문은 이거였다. "니가 요즘 눈여겨 보는 신인 래퍼는 누구냐?". 나의 대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요즘 블랙넛이 좋던데".

    당시의 나는 블랙넛에게 관심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의 가사는 다른 래퍼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다른 래퍼들은 상대와의 경쟁에서 자신이 우위에 있음을 음악으로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이 랩을 얼마나 잘하는지부터 시작해서 내가 랩을 해서 얼마나 비싼 물건들을 살 수 있게 되었는지 늘어놓는 것은 이 과정의 일부이다. 가진 것이 없다면 앞으로 열심히 해서 가지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드러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하지만 블랙넛은 달랐다. 블랙넛이라는 래퍼는 인간으로서 상당히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쇼미더머니' 시즌 4에 나온 그의 모습에서 이를 관찰할 수 있는데, 여성 참가자와 팀이 되자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 했으며, 무대 위에서 심사위원들과 눈이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감은 채 랩을 했다. 이런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블랙넛 스스로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그동안의 그가 선보인 랩의 주된 테마였다. 그는 자신의 비윤리적 욕망과 그것이 찌질한 방식으로 표출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 스스로를 루저(Loser ; 패배자)로 규정하는 그의 태도는 자조적인 수준을 넘어서 자기학대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공격적이었다.

    때문에 그의 가사의 정치적, 윤리적 올바름을 떠나서 그는 독보적인 캐릭터를 가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블랙넛의 가사에 대한 비판 여론은 종종 그의 존재를 완성시켜주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이렇게 욕을 먹을까봐 아무도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래퍼라는 존재감이 생겼다. 그가 썼던 비윤리적 가사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사실 블랙넛 스스로가 자신에게 취하는 입장과 같은 자리에 서있는 셈이라고 나는 느꼈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쇼미더머니'의 출연과 함께 달라진다. 그는 '쇼미더머니' 시즌4에 출연해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가사를 아무렇지 않게 뱉으며 방송에 부적합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박또박하면서도 거침없는 가사를 뱉는 그의 랩과 예측불가한 그의 퍼포먼스는 긍정과 부정을 떠나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고, 그는 꽤 높은 라운드까지 진출하며 소위 '인정받는 래퍼'가 된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곡을 내고 공연을 다니던 시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그의 음악에 엄청난 전환전을 가져오게 된다. '쇼미더머니'를 통해 인정받고 경제적으로 성공한 래퍼과 되었다는 것은 곧 더 이상 블랙넛이 스스로를 공격할 만큼의 '루저'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루저였던 자신이라는 선명한 비하 대상이 사라지자 블랙넛은 공격의 방향을 외부로 틀기 시작한다. 표현의 수위나 공격성은 유지되지만, 그 거침없는 욕설과 비윤리적 표현들은 더 이상 스스로를 향하지 않는다. 소속 레이블인 저스트 뮤직(Just Music)이 발표한 단체곡 'Indigo Child'에서 그가 쓴 가사가 가장 대표적인 예이다. 그는 여성 래퍼, 어린 초등학생,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세월호 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거나 비하하는 의미로 가져다 쓴다.

    이것은 그가 지켜온 '욕먹을까봐 타인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꺼내는 것'이라는 테마를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선택이라고 여겨 진다. 'Indigo Child'의 가사 중 "너넨 이런 말 못하지/늘 숨기려고만 하지", "나는 알아/우린 다 찌질이가 맞아/감추지마 니 진심"같은 가사에서 이러한 전략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쇼미더머니'의 출연과 성공으로 얻은 높은 자존감은 그 공격이 스스로에게 오는 것을 가로막는다. 과녁을 잃은 비윤리적 가사와 직접적인 욕설은 결국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기에 '루저'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향하게 된 '오발탄'에 불과하다.

    그가 이러한 변화에 대한 전략적인 판단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어쩌면 본인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다만 그가 놓친 포인트는 그가 얻었던 환호는 '루저'였던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에 있었던 것이지 그것을 공격적이고 비윤리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었던 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이 마치 그의 불행이 끝나지 않기를 빌고 있는 고약함으로 느껴지지 않기를 바란다. '루저'에서 벗어난 순간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방식이 현재의 모습 뿐일거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블랙넛에게 아무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그의 음악이 존재해야 할 가치를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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