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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의 변화, 더 넓은 세계로의 도약Feature/Entertainment 2017. 4. 5. 11:29반응형
여자친구의 데뷔곡 '유리구슬'은 누가 들어도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 빚을 지고 있는 노래였다. 안무와 의상 역시 두말 할 것 없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팀 이름 또한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이 많았다. 애인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한 개그 코드로 통용되는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유머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데뷔 당시에는 노이즈 마케팅에 힘 입어 이름을 알리려다 사라질 수많은 걸그룹 중 하나처럼 보이기도 했다.
반전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 왔다. EXID에 이어 SNS 시대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신화가 쓰여졌다. 비오는 날 무대에서 '오늘부터 우리는'의 안무를 추다 몇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춤을 이어가는 여자친구의 모습은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때 여자친구를 설명하는 중요한 코드가 형성되었다. 여자친구가 추는 격렬한 안무는 성실성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우연한 계기로 여자친구가 처음 시작하게 되어 이제는 아이돌 그룹의 통과 의례처럼 취급받는 '2배속 댄스' 역시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여자친구가 부르는 노래와 함께 시너지를 냈다. '유리구슬',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로 이어지는 타이틀곡의 전략은 비슷했다. 세 곡 모두 소녀적 감성을 드러내는 가사와 아련한 멜로디, 그리고 박력있는 편곡이 잘 어우러진 좋은 팝 음악이었다. 처음에 말했듯 이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에서 물려 받은 유산이지만, 이제는 여자친구의 시그니쳐가 되었다. 다시 말해 발전적 계승에 성공한 셈이다. 여자친구의 아류로 보이는 걸그룹들이 나타날 만큼 여자친구는 이 분야에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다.
파워 청순이라는 이름 뒤로 의상에서는 성적인 코드를 배치한다는 점도 눈에 띈다. 다소 정갈한 느낌의 교복같은 것을 입고 있던 '시간을 달려서'는 약간 논외로 하자면, '유리구슬'에서의 부르마, '오늘부터 우리는'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민소매 상의와 테니스 스커트, '너 그리고 나'에서 입고 있는 스키니진과 복부를 드러낸 의상 등 남성들 사이에서 성적인 코드로 흔히 소비되는 아이템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해왔다. 시각적으로 남성의 판타지에 맞춘 여성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하며 가사에서는 순진함을 강조하는 것 역시 일정 부분 소녀시대의 'Gee'의 음악과 의상에 빚을 지고 있는 측면이 있다.
2017년 3월 6일에 발매된 4번째 미니 앨범 타이틀곡 'Fingertip'은 이전 곡들에 비하면 그다지 좋은 곡이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이전 곡들의 연장선상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 조금 달라진 맥락이 눈에 띈다. 일단 한 편의 맑은 시 같은 느낌이 강하던 이전 곡들의 가사에 비해 직설적인 가사들이 전면에 나선다. '네 맘을 겨눌게'/'뭐 어때 네 곁에 더 다가가 볼게' 등 직설적 표현으로 곡의 화자의 적극성을 드러낸다. 은유적인 표현을 통해 수동적인 면모를 보이던 이전 곡들과는 확연히 큰 차이점이다.
안무 역시 이전에 비하면 과격하거나 액션이 큰 동작들을 많이 줄이고 디테일한 동작들을 배치한다거나 동선을 잘 활용해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다소 튼 것으로 보인다. 의상에서도 다수의 남성이 공유한다고 여겨지는 수동적인 여성의 판타지에 기대기보다는 확실하게 캐릭터를 드러낼 수 제복과 비슷한 옷으로 바뀌었다. 별 것 아닌 컨셉의 변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자친구가 쌓아 온 '무해하지만 성실한 소녀들'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모든 것이 의도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Fingertip'에서 눈에 확 띄는 방향 전환을 시도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쇼케이스나 각종 예능에서 "이제 멤버 모두 성인이 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 역시 이러한 방향 전환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무해하고 성실한 소녀들'에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생각보다 빠른 시기에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멤버들은 점차 나이를 먹으며 성숙한 사람이 되어갈 것이고, 곡마다 컨셉을 잡고 이미지를 만들어 가야 하는 소속사의 입장에서는 아이돌이자 연예인으로서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 뿐 아니라 멤버 개개인이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갖게 되는 특유의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오게 될 것이다. 미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로 성공했던 그룹이라면 그러한 인간적 변화에 더욱 취약할 수 밖에 없다. 언제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척을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Fingertip'은 반박자 빠른 시기에 시도한 괜찮은 변화라고 생각된다. 눈에 보이는 지표로서의 각종 차트 성적이 이전보다 좋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확실히 이전 곡들보다 노래가 좋지 않다는 측면을 고려했을 때 꼭 이러한 변화의 시도 때문만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Fingertip'은 여자친구가 더 다채로운 모습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괜찮은 전환점이다. 앞으로 어떤 모습을 어떻게 보여줄지 다양한 상상을 하며 기대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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