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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나쁜 힙합 전도사Feature/Entertainment 2017. 3. 30. 15:12반응형
산이(San E)는 분명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마추어 시절 힙합 커뮤니티의 게시판에 자신의 녹음물을 올리며 입소문을 탔고, 당시 가장 핫했던 크루인 오버클래스의 멤버가 됨과 동시에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맺었다. 이 과정 자체로 산이는 유명세를 얻게 되었고 제대로 된 결과물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 중 한 명이 된다. 뮤지션이 되고 싶어하던 워너비들의 우상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론 이는 산이가 뛰어난 래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가사는 종종 유치하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지만, 그만큼 말장난에는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동음이의어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어 다층적인 비유가 활용되며, 비슷한 발음을 찾아서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능력또한 뛰어나다. 또렷한 발성과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전달력도 좋고 무엇보다 곡을 해석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때문에 어떤 곡에서 어떤 주제로 랩을 하든 자신의 색깔을 지니면서도 곡에 어울리는 랩을 뱉을 줄 아는 재능있는 래퍼이다.
다만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낸 결과물들은 상당히 의아한 점이 있었다. 특히 JYP 엔터테인먼트를 나와서 브랜뉴 뮤직으로 이적한 이후 이 경향은 강해졌다. '아는 사람 얘기'나 '이별식탁', '지영이 어머니'같은 곡들은 오랜 시간 그의 재능을 눈여겨 봐왔던 팬들이 원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었다. 그의 음악은 힙합이라는 장르의 특유의 매력은 찾아 보기 어려웠고, 가요를 즐겨 듣는 일반 대중들에게 더 익숙한 노래였다. 'Rap Genius'나 '산 선생님'같은 곡으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위화감이 느껴지는 노래들인 셈이다. 산이가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을지언정 오랫 동안 그를 지켜봐왔던 팬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이때부터 산이는 '공공의 적'이 된다.
물론 대형 기획사와 계약을 하며 '대중적'이라는 알 수 없는 단어의 힘에 이끌려 성공이 보장되었다고들 이야기하는 음악으로 방향을 튼 뮤지션들의 사례는 수없이 봐왔다. 산이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일 뿐이었다. 다만 힙합 음악의 팬들은 산이가 그동안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과 교류하며 내놓았던 결과물을 간간이 접했기 때문에 실망이 컸던 측면도 있다. JYP 시절 발표한 '맛 좋은 산'같은 경우는 대형 기획사와의 줄다리기에서 이길 수 없는 뮤지션 한 명의 입장이 정상참작되었다면, JYP를 나왔을 때 그에게 기대했던 류의 음악이 나오지 않고 오히려 더 대중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자 실망이 커졌다는 일종의 심리적 반동도 컸을 것이다.
어쨌든 산이는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다. 입대 문제가 불거지기 전의 MC몽과 같은 입지가 되었다. 힙합 팬들에겐 공격받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호응을 받는 존재. 결국 힙합이라는 장르를 어느 정도 왜곡하면서도 힙합 뮤지션임을 어필하여 대중음악계에서 힙합 장르의 대표격 이미지를 점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한 비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리다. '힙합'이라는 장르의 실체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정의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다수의 매니아나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인정하는 '힙합 음악'의 개념에 산이의 음악이 포함되기 어렵다는 견해에 동의한다.
오랜 기간 지속되어온 비판 속에 산이가 꺼낸 반박은 상당히 자기방어적이다. 정규 1집 [양치기 소년]의 수록곡 '성공하고 싶었어'에서 자신의 개인사와 결부시켜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는 한 가지 주제만을 강조한다. 음악에 대한 비판을 자신의 개인사와 어쨌든 돈을 벌고 싶었다는 식의 논리로 막아내며 논점은 흐려진다.
이러한 시선은 '모두가 내 발아래'에서 비프리(B-Free)의 디스를 받아치는 부분에서도 드러난다. 비프리의 'Hot Summer'를 언급하며 에프엑스(f(x))의 'Hot Summer'의 한 구절을 부른다. 비프리의 노래가 유명하지 않다는 점을 조롱한 것이다. 상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비프리의 'Hot Summer'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힙합 싱글 부문을 수상한 곡이고 많은 힙합 팬들에게 역시 인정받은 곡이었다. 이 곡을 '유명하지 않다'는 이유 하나로 조롱한다는 것은 산이가 음악과 뮤지션을 바라보는 입장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자신은 유명하고 성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기상천외한 논리 구조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 문제를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발표한 '나쁜 X(Bad Year)'라는 곡에 대한 이야기와 연결시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대통령이라는 직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각종 비리에 악용했다는 혐의가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에서 '여성'이라는 점만을 끄집어 내어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이 곡은 다분히 여성혐오적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흔한 여성혐오 가사로 탈바꿈함으로써 산이 스스로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사람들의 혐오정서를 자극해 원초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매우 손쉬운 방법이다. '나쁜 X의 가사에 등장하는 년은 어디까지나 年이라는 의미이다.'라는 주장은 과연 대통령이 남자였어도 대통령을 비판하는 곡에 '나쁜 년'이라는 표현과 설정이 활용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물론 남자 대통령에게 그런 가사를 쓰는 것 역시 여성혐오적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힙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 루페 피아스코(Lupe Fiasco)가 'Bitch Bad'라는 곡을 발표하며 'Bitch'라는 표현을 지양하자는 선언을 했고, 스눕 독(Snoop Dogg)이나 닥터드레(Dr.Dre)같은 거물급 래퍼들 역시 과거의 여성혐오적 행태를 담은 가사에 대해 사과한 적이 있다. 거기에 국내 힙합 커뮤니티인 힙합엘이(HiphopLE)에서도 Bitch Bad 캠페인을 벌이며 여성혐오적 표현을 지양하자는 움직임에 적극 동참한 바 있다. 물론 그렇다고 힙합에서 'Bitch'라는 표현이나, 그런 여성들을 언급하며 혐오하는 가사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여성혐오적 표현을 서슴치 않고 쓰는 쪽이 다수이다. 다만 힙합 씬 내부에서 여성혐오적 컨텐츠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충분히 크게 나오고 있고, 사회의 인식 역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산이의 '나쁜 X(Bad Year)'는 이 지점을 역행한다. 그러면서도 '나쁜 X(Bad Year)'의 가사가 사회비판적인 힙합 정신으로 소비된다는 점은 매우 안타깝다. 위의 음악적인 이야기와 '나쁜 X(Bad Year)'의 이야기를 연결지어보면, 장르적 관습에서 벗어난 왜곡된 음악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후진적 발상을 힙합이라고 포장해 자신의 입지를 견고하게 다지는 데에 활용하고 있는 한 인물의 얼굴이 드러난다. 알고 했다면 악의적이고 모르고 했다면 무식해서 악의적이게 된다는 말처럼, 산이가 택하는 방식은 힙합이란 장르에 대한 오해를 견고하게 만드는 쪽으로만 흘러가고 있다.
물론 산이는 이러한 비판을 들을 생각이 없어보인다. 최근 발표한 곡 'I am me'에서 '여혐남혐 일베 메갈 여당 야당 너 나/ 오 제발 Please 모두 시끄러'라는 가사를 쓴 것을 볼 때, 자신의 어떤 지점이 비판받고 있는지 고민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뮤지션에게 수차례 디스를 했던 전력이 있는 산이가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모두 시끄러'라고 반응하는 점 역시 매우 흥미롭다. 언제까지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힙합의 이미지를 왜곡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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