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든 피겨스> (2017)Review/[Movie] 2017. 3. 26. 01:42반응형
<히든 피겨스>는 인종 분리 정책이 당연시되고 노골적으로 이루어지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차별받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구성원들에게도 그것이 당연할 리는 없다. 불합리는 곳곳에서 이들을 덮치고 있으며, 이들은 매순간 저항할지 순응할지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불합리에 대한 저항이 불합리로 치부되는 시대에서 저항을 선택하는 일은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들에게는 넘어야 할 관문이 하나 더 있으니 바로 여성이라는 점이다. 어떤 때에는 흑인이라서 안 되고 어떤 때에는 여성이라서 안 된다. 물론 당연히 흑인 여성이라서 안 되는 경우도 많다. "당신이 백인 남성이었다면 엔지니어에 지원했겠냐"는 질문에 "고민할 필요도 없죠. 이미 됐을 테니."라고 말하는 메리 잭슨의 대답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히든 피겨스>는 이 지점을 굳이 비장하거나 슬프게 그리지만은 않는다. 캐서린 존슨이 유색 인종 화장실을 찾아 나사의 건물 사이를 달려가는 장면은 경쾌한 배경 음악과 함께 일종의 블랙 코미디로 가볍게 연출된다. 덕분에 이 일이 기폭제가 되어 캐서린 존슨이 자신의 눌러왔던 분노를 토하는 장면은 앞에서의 장면을 코믹하게 연출했던 만큼 더 큰 감정을 만들어낸다.
은근하기에 언제나 이들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차별의 공기를 뚫고 나가는 것은 주인공들의 개인기다. 캐서린 존슨은 다른 이들이 하기 어려운 계산을 척척 해내며 인정을 받아 가고 도로시 본은 컴퓨터 작동법을 배우며 메리 잭슨은 자신의 꿈을 위해 법정 다툼까지 불사한다. 이들은 순전히 개인의 능력으로 흑인 여성이라서 받아 왔던 차별을 하나하나 넘어간다.
불합리함을 개인의 능력으로 뚫고 나가는 서사는 언제나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히든 피겨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 주인공이 차별을 넘어서 능력을 선보이고 당당하게 턱 끝을 치켜드는 순간,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드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백인 남성들이 부각되는 역사에 감춰 졌던 흑인 여성들의 서사는 그 자체로 매우 매력적이며 감동적이다.
다만 즐겁게 잘 만든 영화가 끝나고 돌아온 현실은 녹록치 않다. 세 주인공이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서 차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흑인들은, 또 여성들은, 그리고 흑인 여성들은 더더욱 가열차게 차별에 맞서 싸워야 했고 그 싸움은 현재진행형이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화장실에서 백인 여성과 도로시 본이 나누는 대화이다. 도로시 본의 승진에 부정적이었던 백인 여성이 "나는 당신에게 악감정은 없어요"라고 하자 도로시 본은 "알아요.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겠지요."라고 답한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가 2010년대를 살아가는 현재에 보내는 가장 선명한 메시지이다.
반응형'Review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더우먼> (2017) (0) 2017.05.31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2017) (0) 2017.05.04 <새벽의 저주> (2004) (0) 2017.04.03 <로건> (2017) (0) 2017.03.27 <수어사이드 스쿼드> (2016) (0) 2017.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