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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저주> (2004)Review/[Movie] 2017. 4. 3. 14:29반응형
좀비 영화의 성격은 좀비라는 존재 하나로 다양해지는 면이 있다. 언제 좀비에게 잡아 먹힐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준다는 점에서는 스릴러에 가깝고, 좀비가 사람을 공격하면 공격당한 사람은 다시 좀비가 되기 때문에 빠른 속도로 세상이 망해간다는 점에서는 재난 영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 또 대부분의 좀비들은 시체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혐오감을 주고, 좀비라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주는 공포로 인한 호러물의 성격 또한 갖추고 있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좀비 영화는 좀비에게 쫓기고 도망가는 단순한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여러 가지 요소들을 활용해 다양한 이야기를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새벽의 저주>는 이 부분들을 다양하게 활용한다. 기본적으로 <새벽의 저주>에 등장하는 좀비들은 엄청나게 빠르게 뛰어다닌다. 더구나 '머리가 뚫리거나 불에 타면 죽는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단점이 없다. 심지어 다리가 없는 좀비는 천장에 매달린 배관에 매달려 이동하기까지하니 거의 천하무적에 가깝다. 따라서 잠깐의 방심이나 판단착오는 곧 죽음으로 연결된다. 영화는 이 점을 매우 잘 활용하여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긴장을 놓칠 수 없게 한다.
하지만 계속 긴장을 한다면 관객의 피로감이 누적될 터, <새벽의 저주>는 중간중간 쇼핑몰로 피신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장면들도 비춰주면서 잠시 긴장을 늦출 수 있게 하는 여유로운 완급 조절 역시 능숙하게 해낸다. 후반부에 좀비에게 쫓기다 간신히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 경비원 CJ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이 음악 좋아."라고 말하고 함께 탑승한 사람들도 별말 없이 동의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새벽의 저주>만의 독특한 감성이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좀비들을 피해 쇼핑몰로 숨어든 사람들의 관점에서 영화를 풀어간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다. 좀비가 왜 발생했고, 어떤 방식으로 퍼지며 어디까지 점령되었는지 같은 구체적인 정보는 영화에서 거의 전무하다. 초반에 TV 중계를 통해 몇몇 사실들을 접하지만 좀비 발생 사태가 벌어진 지 얼마 안 된 상태라 방송국의 정보 역시 부정확하며 극히 제한적이다. 몇몇 재난 영화에서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기 위해 사용하는 유별난 직업적 특징 같은 것은 없다. 등장인물 누구도 왜 이런 일이 벌어났는지 알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이 사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흔하디 흔한 일반인들의 노력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기에 영화는 좀비라는 가상의 존재를 다루면서도 현실감을 부여한다. 물론 일반인이라기엔 총을 너무 잘 쏘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좀비 영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처음 만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모였을 때 펼치는 각종 인간 군상들의 모습 역시 확인할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깊은 애나, 냉철한 판단력과 행동력을 가진 마이클과 케네스, 냉정하고 이기적인 듯 하지만 속이 깊은 CJ는 물론 남일이라곤 눈꼽만큼도 관심도 없는 스티브나 고의는 아니지만 이기적 행동으로 여러 사람을 위기에 몰아 넣는 니콜까지 각양각색의 성격을 가진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2시간이 채 안되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 러닝 타임 안에서도 이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파악하기 쉽도록 설정하고 이들로 인해 여러 사건들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도록 연출한 솜씨는 정말 탁월하다.
<새벽의 저주>는 스토리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역력하다. 특히 극 초반에 애나가 차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는 모습을 헬기에서 찍은 듯 보여주는 장면이나, 총을 쏠 때마다 탄피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장면 등 다채로운 볼거리들을 제공한다. 후반부에 좀비들이 떼로 몰려드는 장면 역시 압도적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등장하는 영상은 셀프 카메라의 형식까지 빌려 왔다.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해 고민을 정말 많이 했고, 그렇게 나온 다양한 결과물들을 자연스럽게 섞어 놓았다. 덕분에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다.
<새벽의 저주>는 내가 좀비물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한 영화이다. 어린 시절 친구집에서 비디오로 빌려서 봤을 때의 그 충격을 아직 잊지 못한다.(영화가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던 건 잠시 잊자) 오랜만에 다시 돌려봐도 10년이 넘은 영화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탁월하다. <새벽의 저주>는 좀비물도 잘 만들 수 있고, 흥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젖힌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집에서 혼자 있을 때 보기는 권하지 않는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음에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봐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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