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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씨네필은 아니지만>Review/ETC 2017. 3. 26. 18:57반응형
한국의 팟캐스트 지형은 종편에 대한 반발 심리와 기성 언론 환경의 신뢰감 상실로 인한 대안 언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다수의 청취자들 역시 이런 정치 시사 분야에 쏠려 있고, 이 분야의 컨텐츠가 상당수를 차지한다.
다만 그 틈 사이에서도 순전히 개인들의 노력과 힘으로 나름의 영역을 개척해 나가는 방송들이 있다.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손꼽히는 인문학 팟캐스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경우, 정치적인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서도 알찬 방송을 만들어냈으며 진행자들은 출판 분야나 기성 방송에서도 나름의 활약을 펼치는 등 한국 팟캐스트 지형의 새로운 바람을 불러 일으키는 중이다. 오늘 이야기할 팟캐스트 역시 정치나 시사 분야와는 거리가 있지만 나름의 컨텐츠로 입소문을 타고 있는 팟캐스트, 바로 영화 이야기를 다루는 <씨네필은 아니지만>이다.
영화와 관련한 팟캐스트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 관련 팟캐스트는 기성 영화 평론가나 방송국 PD 등 업계에서 이미 유명세를 지니고 있는 이들의 방송이었고, 이들은 자신이 쓰는 영화 감상평을 음성으로 옮기면서 팟캐스트라는 형식의 자유로움을 조금 더 활용하는 경우에 가까웠다.
하지만 <씨네필은 아니지만>은 사정이 다르다. 유명세라는 권력을 방송의 설득력 중 중요한 부분으로 활용하던 기존의 영화 팟캐스트와 달리, <씨네필은 아니지만>의 두 진행자인 은조와 다비는 이 방송을 진행하는 것 외에 대외적으로 드러난 프로필이 전무하다. 제목인 <씨네필은 아니지만>에서 알 수 있듯 이들은 자신들의 영화 분야에 관한 전문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도 않고 활용하려 하지도 않는다.
청취자 투표에서 낮은 득표율을 얻어 사용되지 못한 대문
이 점이 이 팟캐스트의 가장 큰 매력인데, 복잡하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며 대중을 설득하고 가르치는 듯하는 기존 영화 평론가들과 달리 이들은 일상의 언어를 활용해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눈다. 매번 가장 앞에 진행되는 감독의 필모그래피나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역시 영화나 감독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청취자들도 어렵지 않게 방송 내용을 따라갈 수 있게 돕는 중요한 장치이다.
또 하나의 매력은 두 진행자가 평론가들의 평가를 다시 평가하는 코너가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비록 씨네필은 아니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영화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평론가들의 평과 일반 대중들 사이의 간격을 자연스럽게 메꾼다. 물론 납득하기 힘든 평론에 대해서 반박을 제시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까지나 관람객의 관점에서 모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영화 <1724 기방 난동 사건>의 한 장면. 이 영화를 다룬 팟캐스트는 <씨네필은 아니지만>이 유일할 것이다.
영화를 선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씨네필은 아니지만>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최신작을 다룰 때를 제외하면, 이들은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는 영화들이나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나 유명하지 않은 류의 영화들을 선택하기보다는 '명망작(名亡作)'이라고 불리는, 일종의 '망한 걸로 유명한 영화'들을 자주 선정한다. 표면상 드러나는 주된 이유는 두 진행자가 서로를 괴롭히기 위함(...)이라지만, 이 과정에서 의외의 매력이 발굴되는 영화들도 있고, 다룬다는 것 자체로 방송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영화들도 있다.
마치 친한 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듯, <씨네필은 아니지만>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떠든다. 어려운 지식이나 지나치게 현학적인 해석없이, 유쾌하면서도 날카롭게 영화의 내용을 파고들며 그 과정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들을 정확히 짚어준다. 특히 일반 대중, 더 정확하게는 두 진행자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젊은 사람과 여성이라는 관점에서 자신들이 느끼는 바를 콕콕 집어내는 <씨네필은 아니지만>은 여타 영화 팟캐스트에서 느낄 수 없는 독보적이고 명랑한 매력을 한껏 가지고 있다. 만약 영화를 보고 싶은데 시간적 여유가 없거나, 영화를 보고 나서 즐겁게 떠들 만한 친구가 필요하다면 <씨네필은 아니지만>을 들어보기를 꼭 권한다. 어느 순간부터 두 진행자의 웃음 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울리게 될 것이다.
p.s. <씨네필은 아니지만>의 진행자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트 공식 SNS는 공복이거나 야심한 밤에는 들어가지 않기를 권한다.반응형'Review > ETC'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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