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킵루츠(Keeproots) 프로듀싱 트랙 FAVORITE 5Feature/FAVORITE 5 2019. 7. 9. 11:56반응형
Intro
개인적으로 내가 한국 힙합에서 가장 뛰어난 프로듀서를 꼽는다면 주저없이 킵루츠(Keeproots)를 꼽을 것이다. 부산의 힙합 크루 DMS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2003년 첫 앨범 [Keepin' the Roots EP]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킵루츠는 데뷔 초기에는 래퍼와 프로듀서의 포지션을 동시에 소화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다소 좋지 못한 평을 들었던 래핑보다는 호평 일색이었던 프로듀싱 쪽으로 방향을 굳혔고, 가리온, 피타입 등의 걸출한 한국 힙합 뮤지션들의 앨범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은지원의 메인 프로듀서로 활동했다.(은지원의 친구로 '1박2일'에 출연한 적도 있다.) 킵루츠는 재지한 그루브를 바탕으로 하는 트랙으로 정평이 나있지만, 그 외에도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이며 한국 힙합의 중요한 프로듀서로 자리잡았다. 현재는 불한당 크루의 멤버로, 또 힙합을 넘어서 다양한 대중 가요를 작곡하는 작곡가로 활동을 넓혀가고 있는 킵루츠가 만든 트랙 중 가장 인상적인 트랙 5곡을 꼽아 보았다. 순서는 발매일 순.
1.P-type - Musiq Noir(feat. C-Luv)
2004년 발매된 피타입(P-type)의 1집 [Heavy Bass]는 속칭 '한국 힙합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이 앨범의 타이틀 곡 "돈키호테(feat.휘성)"는 한때 '교가'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UMC/UW가 "공연장에서 사람들이 피타입의 돈키호테를 교가처럼 따라부르더라"라는 말에서부터 시작됐다.(이후 피타입도 간간이 '돈키호테'를 부르기 전에 "교가 한 번 부릅시다."하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킵루츠는 이 앨범에서 총 7곡의 프로듀싱을 맡으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인상깊은 트랙은 앨범에서 유독 이질적인 트랙 'Musiq Noir'이다.
대부분 '힙합'과 관련된 주제로 가득 채운 앨범에서 'Musiq Noir'만은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한다. 물론 큰 의미에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Musiq Noir'는 쓸쓸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재지한 룹 위에 다른 트랙들과 달리 착잡한 톤으로 랩을 뱉는 피타입의 목소리가 썩 잘 어울린다. 붐뱁에 가까운 성향의 다른 트랙들보다 킵루츠라는 프로듀서의 특색이 가장 짙게 배어 나오는 이 트랙은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만든다. 제목처럼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커피와 함께 담배를 태우는 남자의 모습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떠오르는 곡이다.
2.Minos - Vivid Dream(feat.있다)
2008년 발매된 마이노스(Minos)의 솔로 1집 [Ugly Talkin']의 수록곡. 탱고 음악을 듣는 듯 변칙적인 피아노 연주 위에 격정적인 드럼이 깔리고 그 위에 떠나간 여인을 저주하는 듯 격정에 찬 래핑을 뱉는 마이노스의 랩이 인상적인 곡이다. 거기에 몽환적인 분위기에 있다(itta)의 보컬까지 얹어지면, 가사에 등장하는 전 여친에게 집착적인 증세를 보이는 한 남자의 혼란스러운 내면을 엿보는 듯하다. 싸이월드에 익숙치 않은 세대가 듣는다면 "너의 미니홈피"라든지 "방명록"같은 단어들은 다소 생경하게 들리겠지만.
3.가리온 - 영순위(feat.넋업샨)
앨범이 발매된 순간부터, 아니 발매 직전에 미리 들어본 사람들로부터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던, 이제는 가리온의 대표곡이 된 '영순위' 역시 킵루츠의 트랙이다. 가리온의 인터뷰에 의하면 킵루츠 본인도 이 트랙은 '괴물'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이지(JAY Z)의 대표적인 명반 [Blueprint]에 수록되었다 해도 이질감이 전혀 없을, 매우 강렬한 에너지를 뿜는 트랙이다. 그 위에 한국 힙합의 베테랑 중의 베테랑인 가리온의 두 멤버와 넋업샨 역시 트랙의 힘에 밀리지 않는 박력있는 랩을 선사한다. 벌스(Verse) 부분에서 점점 고조되던 분위기가 후렴에서 제대로 터지는, 다른 말 필요 없이 힙합 그 자체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트랙.
후문으로 원래 넋업샨의 자리에는 드렁큰 타이거의 타이거JK가 랩을 할 예정이었고, 타이거JK 역시 가사를 써서 가녹음본까지 보냈었다고 한다. 허나 앨범 작업 중간에 가리온과 타이거JK의 공백기가 맞물리면서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타이거JK의 대타로 넋업샨이 투입됐다고 하는데, 넋업샨의 벌스 역시 엄지를 치켜들만 하지만, 이 트랙 위에서 가리온과 타이거JK의 조화가 어땠을까 상상해본다면 아쉬움이 가시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4.Eluphant - 분실물
키비(kebee)와 마이노스(minos)의 듀오, 이루펀트(Eluphant)가 단발성이 아닌 정규 팀으로 활동했음을 알리면서 발표된 2집 앨범. 섬세한 감성을 스토리텔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던 이루펀트답게 앨범 곳곳에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트랙은 '분실물'이다. 20대를 마무리하고 30대로 넘어가던 시점의 두 뮤지션의 솔직한 가사가 꽤 깊은 감동을 준다. 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당연히 킵루츠의 프로듀싱이 일조를 했다. 단촐한 듯하면서도 처연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트랙은 두 래퍼의 목소리에 더욱 힘을 싣는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마이노스의 후렴이나 곡 후반부에 쓸쓸한 분위기를 극대화하는 정기고의 휘파람 소리도 이 곡의 매력 포인트.
5.불한당 - 불한당가
한국 힙합의 베테랑들이 모여 만든 크루 '불한당'에서 킵루츠의 존재감은 이들이 모여 만든 컴필레이션 앨범 '절충 Vol.3'의 타이틀곡인 '불한당가' 한 곡으로 증명된다. 국악을 베이스로 한 악기 구성과 보컬 샘플 위에 넋업샨, 나찰, 피타입, MC 메타 등 각 래퍼의 벌스마다 다른 특색을 보이며 이어지는 트랙은 과연 킵루츠라는 찬사를 보내기에 아깝지 않다. 그동안 국악이라는 코드와 힙합의 접목은 꽤 있어왔지만 힙합팬들의 귀를 만족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악을 가장 힙합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며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데까지 성공한 이 트랙은 발매된 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한국 힙합 역사에 가장 인상적인 트랙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휘몰아치는 듯한 넋업샨과 피타입의 랩, 느긋한 듯 늘어지며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가리온의 두 멤버의 랩 역시 왜 이들이 베테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를 충분히 보여주는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Outro
킵루츠는 2003년 첫 앨범 [Keepin' the Roots]를 발매한 뒤 본인의 정규 앨범 [Black Coffee LP]를 작업 중이라고 밝혔다. 그 이후 아이콘(YG의 iKon이 아니라 ICON)이라는 팀으로 한 차례 앨범을 발매한 적이 있지만 애매한 완성도로 큰 반향을 얻지는 못했고, 그 이후에는 킵루츠 본인의 작업물은 찾아보기 힘든 상태이다. 아이콘으로 활동하던 당시 인터뷰에서 [Black Coffee LP]가 취소되지 않았다는 발언이나(물론 벌써 이 인터뷰도 10년 정도 지났다), 몇 년전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서 여전히 본인의 솔로 앨범을 작업하고 싶다는 의지를 표명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의 프로듀싱으로 꽉 찬 앨범 한 장을 여전히 기다리는 팬이 여기 있다는 흔적을 남기고자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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