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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좌의 게임> 은 결말을 어떻게 망쳤나?
    Review/ETC 2019. 5. 25.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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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고★☆
    이 글은 드라마 <왕좌의 게임> 전반에 걸친 스포들을 매우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보시는 분들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썼으니 조심 또 조심.

    드디어, 끝.

    개인적으로는 시즌 4가 막 끝났을 무렵부터 정주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함께 한 사람들보다는 길지 않겠지만, 어쨌든 나에게도 5년이란 시간을 꾸준히 함께 해 온 <왕좌의 게임>이 드디어 끝났다. 마지막 시즌인 시즌 8은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미 원작인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의 내용은 아득히 추월했고, 중간중간 소설과 달라진 내용도 많은 이 드라마가 과연 어떻게 끝맺음을 지을 것인가. 시즌 8의 마지막회까지 방영된 지금, 시청자들의 반응은 꽤 차갑다. 물론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지만, 해외에서 시즌 8을 다시 만들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이런 반응에 단순히 결말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한두 사람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 아니라 많은 시청자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왕좌의 게임> 시즌 8은 분명 실패한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잘못된걸까? 개인적으로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하나하나 짚어보자. 

    1. <왕좌의 게임>에서 '죽음'을 활용하는 방식

    '리틀 핑거'로 불린 '피터 베일리쉬'. 에이든 길런 분.

    원래 몸값 비싸고 유명한 배우들도 잘만 죽어나가는 미국 드라마이긴 하지만, <왕좌의 게임>은 사람들이 매력적이라고 느끼던 캐릭터들을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퇴장시켜왔다.  보통 '죽음'으로 이루어지는 퇴장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또한 그 '죽음'으로 인해서 촉발된 감정과 이해 관계들이 다음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힘이 되기도 했다. 깊이 찾아볼 것도 없이 에다드 스타크, 조프리 바라테온, 미르셀라 바라테온, 오베린 마르텔 등 이야기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던 캐릭터들은 각자의 이유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이로 인해 이야기들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만 갔다.

    하지만 시즌8에서의 캐릭터들의 퇴장은 그냥 '죽음' 뿐이었다. 시즌 내내 흑막같은 모습을 보이던 리틀 핑거와 대너리스의 참모인 바리스는 배신한 게 들켜서 죽었고, 조라 모르몬트는 죽은자들과의 전투 이후 사망한다. 제이미 라니스터는 서세이 라니스터를 지키기 위해 무모한 행동을 하다 죽음을 맞는다. 산도르 클레게인은 형과의 전투 끝에 사망하게 된다. 물론 시즌의 마지막이고 어떻게든 각 캐릭터가 지닌 스토리를 마무리했어야 하는 입장은 이해하지만, 제작진은 결말을 어떻게 지어야할 지 복잡하고 머리 아픈 캐릭터들은 '죽음'이라는 손쉬운 방식으로 끝맺어버린 인상을 풍긴다. 저 인물이 지금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연출로 충분히 표현되지 않았고, 그들의 죽음은 그냥 그들의 죽음으로 남을 뿐 어떤 후속 이벤트도 촉발시키지 않는다. 각 캐릭터에 몰입을 하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죽음들이 너무 많았다는 게 시즌 8이 문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큰 사건 앞에서 납작해진 캐릭터들

    <왕좌의 게임>은 7개의 왕국으로 구성된 웨스테로스에, 장벽 너머에 있는 야인들과 화이트 워커, 심지어 대너리스 타가리엔이 성장하는 동쪽 대륙까지 넓은 공간적 배경을 가지고 진행되어 왔다. 이로 인해 캐릭터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아무 관련 없는 듯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저마다 다양한 서사를 쌓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여러 캐릭터들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분에 포함되기 어려울 정도로 다채로운 모습을 지니고 저마다의 매력으로 시청자들을 끌어당겼다.

    '제이미 라니스터', 니콜라스 코스테르발다우 분

    하지만 시즌 8에서는 "화이트 워커의 침공"과 "킹스랜딩 쟁탈전"이라는(참고로 내멋대로 붙여 본 이름이다) 2가지 큰 사건 앞에서 아주 단순하게 표현된다. "화이트 워커의 침공"에서는 '살아있는 자 vs 화이트 워커와 시체들', "킹스랜딩 쟁탈전"에서는 '서세이 라니스터  vs 대너리스 타가리엔'이라는 양분된 구도 속에서 캐릭터들은 자신의 개성을 잃는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시즌 8의 2화에서 제이미 라니스터가 윈터펠에 당도한 부분이다. 제이미 라니스터는 윈터펠에서 브랜든 스타크와 산사 스타크, 대너리스 타가리엔, 존 스노우 등 과거의 자신이 저지른 일들로 인해 고통받아 온 사람들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데, 이 상황에서 브리엔 타스의 두둔과 "화이트 워커와 싸우기 위해 한 명이라도 더 있는 게 낫다."는 존 스노우의 발언으로 모든 갈등이 유야무야된다. 

    '아리아 스타크', 메이지 윌리암스 분.

    스타크 가문의 캐릭터 중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아리아 스타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시즌 1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어가며 '얼굴 없는 자'가 되기까지 한 아리아 스타크이지만, 화이트 워커를 죽이는 장면은 그동안의 아리아 스타크가 얻어낸 것들과는 큰 관련 없어 보이는 일격필살이었다(물론 이 장면의 연출 자체는 매우 손에 땀을 쥐고 봤지만). 급습으로 화이트 워커를 죽이는 장면은 굳이 아리아가 아니라 존 스노우였어도, 제이미 라니스터였어도, 심지어 포드릭 페인이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순간이었다. 아리아가 화이트 워커를 죽이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면, 아리아의 캐릭터가 훨씬 더 잘 살아나는 방식으로의 고민이 부족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지점이다.

    3. 대너리스는 왜 킹스랜딩을 불태우는가?

    '대너리스 타가리엔', 에밀리아 클라크 분.

    가장 의아한 에피소드는 시즌 8의 5화이다. 대너리스는 용을 타고 킹스랜딩으로 진격하여 용을 죽이기 위해 만든 대응 무기들을 모조리 불사르고 사실상 킹스랜딩을 점령한다. 대너리스는 종소리가 울리면 이것을 항복 신호로 간주하여 더 이상 살상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고, 종소리는 킹스랜딩에 울려퍼진다. 하지만 이후 대너리스는 다시 용을 타고 날아올라서 킹스랜딩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장면은 시즌 8 5화에서 몇십 분이 넘도록 계속된다.

    제작진의 인터뷰나 대너리스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대너리스는 어린 나이에 왕좌를 되찾겠다는 일념 하나로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우군들을 얻었지만 또 그들을 모두 잃기까지 했다. 심지어 몇몇은 고지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잡혀가거나, 공격 당해 죽거나, 자신을 배신했다. 그런 대너리스가 그토록 그리던 킹스랜딩의 레드킵을 보는 순간 쌓여오고 억눌렸던 분노가 폭발했으리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다.

    다만 문제는 연출인데, 대너리스가 종소리를 듣고 다시 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순간부터 화면에는 대너리스의 표정이 거의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잔인하리만치 긴 시간을 불타죽는 킹스랜딩의 평범한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대너리스의 복잡한 심경에 이입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은 채, 대너리스의 포악한 모습만을 부각한 것이다. 8개의 시즌을 거치며 대너리스가 보여 준 캐릭터는 고압적이고 잔인하기도 하지만, 인자하면서 사려 깊기도 했다. 그러한 캐릭터에 매력을 느꼈던 시청자들은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불타고 성벽이 녹아내리는 장면을 수십 분간 보면서 대너리스가 대체 왜 저러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지만, 그 어떤 연출도 그런 시청자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다.

    대너리스 타가리엔의 심경 변화는 이렇게 화난 표정 한 번 짓는 것으로 퉁쳐버렸다.

    결국 "대너리스는 폭군이 되고 그것이 심판을 받으며 또 다른 누군가가 왕이 된다."는 결말을 짧은 시간에 보이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한 셈이다. 드라마를 보고 몰입하고 생각하는 시청자의 감정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연출은 대너리스 타가리엔이 아닌 제작진을 향한 분노에 불을 붙이고 말았다. 차라리 한 회 정도만이라도 더 할애해서 대너리스가 레드킵을 정복했음에도 자신을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웨스테로스의 영주들이나 시민들과 끝없이 갈등하고 주변 사람들마저 그들의 편을 들면서 쌓여 온 분노를 표출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면 어땠을까?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어쨌든, 끝.

    재밌게도 비슷한 시기에 큰 이야기를 하나 마무리한 <어벤져스: 엔드 게임>과 비교해보면 <왕좌의 게임> 시즌 8에 대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비록 <어벤져스: 엔드 게임>은 개연성이나 작품의 내적 완성도에서 아쉬움을 많이 남긴 영화이지만, 캐릭터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 캐릭터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던 사람들을 배려했다는 것 하나로 꾸준히 따라온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고 있는 것을 떠올려 보면 이 대비는 더욱 뚜렷하다.(물론 <어벤져스: 엔드 게임>도 한 캐릭터만큼은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나쁜 놈들) 어쨌든 <왕좌의 게임>은 끝이 났다. 결국 만들어진 이야기와 캐릭터들이고 이를 어떻게 끌고 나가는지는 제작진의 결정이다. 시즌8이 다시 제작될 가능성은 로또를 사지 않고 1등에 당첨될 확률에 가깝다. 다만 여러 캐릭터를 사랑한 시청자들에 대한 배려가 매우 부족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더불어 아리아 스타크가 웨스테로스의 서쪽을 탐험하는 후속작이 나오길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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