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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생을 갈아 넣은 연예기획사의 책임방기쇼, 아이돌 서바이벌Feature/Entertainment 2017. 8. 31. 23:11반응형
아이돌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이다. 이 말을 몇 년전부터 썼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어쨌든 지금도 달라진 건 없다. 1년에 기백팀이 데뷔하고 사라지며, 그 어떤 방송 무대에도 서보지 못한 팀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아이돌 그룹은 정말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해야 한다. 사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분야는 없다. 그저 아이돌 그룹 시장도 다르지 않을 뿐이다.
한국 가요계에 큰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킨 Mnet '프로듀스 101'
하지만 최근들어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생존자에게 데뷔라는 보상을 선사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최고의 히트작은 Mnet의 '프로듀스 101'이지만, 소속 기획사와 상관없이 참가를 하고 데뷔 이후에도 한시적 활동을 하다가 해체한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이벤트성이 강하다. 때문에 이 '프로듀스 101'은 논외로 하고자 한다.
내가 언급하려고 하는 프로그램은 특정 연예 기획사 소속 연습생들을 데리고 그 기획사의 선배 가수, 혹은 대표가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고 시청자들의 투표 참여를 통해 데뷔 멤버를 선발하는 프로그램들이다. 위너(WINNER), 아이콘(iKON), 트와이스(TWICE), 몬스타엑스(MONSTA X), SF9, 펜타곤, 모모랜드 등의 팀이 이런 과정을 거쳐 데뷔했다.
M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식스틴'으로 데뷔한 트와이스. 트와이스의 'Cheer Up'은 2016년 한국에서 가장 많이 스트리밍된 노래였다.
이런 방식의 데뷔는 연예 기획사에게 분명한 장점이 있다. 우선 인기가 입증된 멤버들이 선발되어 멤버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시청자의 투표를 멤버 선발에 반영하는데, 연습생들 중 미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스타성을 잘 뽐낸 멤버들이 선발됨으로써 다른 아이돌 그룹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데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을 방송함으로써 데뷔 이전부터 멤버들과 팀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글 초반에 언급했듯 이미 포화상태인 아이돌 그룹 시장에서 데뷔하기도 전에 그룹과 멤버들이 얼굴과 이름을 노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위험 요소를 꽤 많이 줄일 수 있는 해봄직한 선택지이다.
YG의 보이그룹 아이콘(iKON). 일부 멤버들은 'WIN : Who Is Next?'를 거쳐 'Mix & Match'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서바이벌을 거쳐야 했다.
하지만 이것은 연예기획사들의 분명한 책임방기이다. 어떤 연습생을 어떤 컨셉으로 묶어 어떤 노래와 함께 내놓는냐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시장의 평가를 받는 것이 연예기획사의 할 일이다. 그런데 아이돌 그룹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멤버 구성을 시청자의 평가에 맡긴다는 것은 자신들이 할 일을 소비자들에게 미루는 태도이다. 우리는 누구를 뽑아야 성공할 지 모르겠으니, 너희가 좋아하는 애들을 고르면 그 애들을 뽑아서 데뷔시키겠다는, 엄청나게 나태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아직 데뷔 전인 연습생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 잔인하다. 이런 서바이벌에서 탈락한 연습생은 좋게 말하면 아직 데뷔할 준비가 덜 된 사람일 수도 있지만, 연예인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제대로 데뷔해서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다분하다. 컨셉을 잡고, 트레이닝을 하고, 외모에 맞는 스타일링을 하는 연예 기획사의 관리가 완벽하게 닿지 않은 상태에서의 매력을 소비자들에게 증명받아야 기획사의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괴상한 시스템은 그저 귀찮은 일은 떠맡기고 싶은 연예기획사들의 책임방기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보이그룹 빅뱅(BIG BANG). 이들 역시 10여 년 전 인터넷 방송을 통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한 연습생을 기억한다. MBC MUSIC에서 제작한 걸그룹 카라의 새 멤버 선발 서바이벌 프로그램 '카라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故안소진 씨. 개인적으로 그 서바이벌에 참여한 멤버들 중 가장 애착이 있었기에 늘 그녀에게 투표를 했고 부디 멤버로 선발되기를 바랐으나 안타깝게 그녀는 탈락하고 말았고, 이후 소속사와의 계약마저 끝난 상태에서 우울증을 겪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물론 그녀의 죽음에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는 함부로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단순히 연예기획사에서 데뷔 멤버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과, 대중에게 선택을 받지 못해 데뷔할 자격을 갖지 못했다는 것 중 어떤 것이 연습생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게 될 지에 대해 분명히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연습생들의 꿈과 간절함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방송사는 시청률을 얻고, 기획사는 할 일을 하지 않고 위험요소를 줄이지만, 그 과정에서 막상 꿈을 가진 연습생들이 축나는 이런 시스템이 왜 가요계에서 활발히 가동되고 있는지 의문을 표하고 싶다. 아이돌 그룹은 냉정하게 말해서 상품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분명히 인간이라는 점을 연예기획사들이 잊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도 든다. 부디 자신들이 할 일은 자신들이 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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