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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넛과 스윙스가 꿈꾸는 세상Feature/Entertainment 2017. 6. 9. 22:06반응형
지난 글에서 저스트 뮤직(Just Music) 소속의 아티스트 블랙넛(Black Nut)에 대해 다룬 적이 있다.(링크 "블랙넛(Black Nut), 갈 곳 잃은 오발탄") 블랙넛은 사회적인 금기를 깨가며 자신을 공격하는 특이한 성향의 래퍼였으나, '쇼미더머니'에서의 성공 이후 자신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금기를 깬다'는 개념만 남아 타인을 향한 공격을 서슴없이 행하는 방향으로 변질되었다고 결론을 내렸었다.
그리고 최근 블랙넛의 비윤리적 가사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래퍼 키디비(KittiB)가 블랙넛을 고소한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블랙넛은 2016년 초에 공개된 저스트 뮤직의 단체곡 'Indigo Child'에 키디비를 향한 성폭력적 가사를 썼고, 최근 공개된 저스트 뮤직의 컴필레이션 앨범 수록곡 중 'Too Real'에서 한 번 더 성폭력을 행했으며, 미공개곡의 가사에서도 키디비를 비슷한 방식으로 언급했음이 드러났다. 사법 처리 과정의 결과는 기다려봐야 알겠지만, 이 자체만으로도 블랙넛이라는 뮤지션의 해악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한다.
키디비를 언급한 블랙넛의 가사를 '디스(Diss)의 일종'이라는 시각으로 봐선 안 된다. 디스가 성립되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사적인 관계에서 생겼던 트러블이건, 혹은 상대의 음악이나 특정 발언에 대한 비판이건 뚜렷한 이유가 필요하다. 명분없는 디스는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의 일환으로 치부되며 디스를 한 사람이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블랙넛의 가사를 보면 키디비에 대해 뚜렷한 불만은 없다. 키디비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적 대상으로 삼아 성희롱을 서슴없이 내뱉을 뿐이다.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 두 사람 모두 래퍼라는 이유로 이것을 디스라고 파악해서는 안 된다.
키디비가 블랙넛을 고소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블랙넛의 레이블인 저스트 뮤직의 수장 스윙스(Swings)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린다. "인생은 짧아. 규칙 좀 깨. 너그럽게 용서해."로 시작하는 이 글은 마치 키디비가 속이 좁거나 규칙에 얽매이는 사람이어서 블랙넛의 가사에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필요 이상으로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스윙스의 본의가 무엇이건 이 타이밍에 이 글을 올렸다는 것은 분명히 키디비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읽힐 수 밖에 없다.
결국 스윙스와 블랙넛이 원하는 세상은 "금기"라고 부르는 것들을 깨부수는 것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하는 것 같다. 이미 'Indigo Child'에서 키디비를 언급한 것으로 논란이 되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다시 한 번 키디비를 같은 방식으로 가사에 언급했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가 나름대로 가치있는 것이라는 신념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면 금기를 깨뜨리는 것이 곧 사회의 진보라거나 일종의 가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우리 사회에는 불필요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과한 금기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은 부르는 이에 따라 '금기'라고 부를 수도, 혹은 '예의'나 '예절', '원래 그런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 중에서 어떤 것들이 사회 발전을 가로막거나 오히려 사회를 퇴화시키는 것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펼치는 사람들이 존재하며, 그로 움직임의 결과로 인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금기를 깨는 것이 곧 발전은 아니다.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금기'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생겨나고 발전되기도 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김영란법이나 현재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는 성적지향으로 인한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같은 것이 바로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 맞춰 불필요한 규칙은 폐기하고 더 나은 사회에 적합한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문명 사회이다.
그렇다면 블랙넛이 깨뜨린 금기는 무엇인가? 키디비에 대한 성폭력은 남성이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하고 성적 대상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깨뜨렸다. 블랙넛은 비단 키디비 뿐 아니라 'Indigo Child'에서는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환자, 미성년 여성, 세월호까지 비하의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가 깨뜨린 금기는 "사회적 약자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보다 나은 문명 사회를 위해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으로, 이것을 깨뜨리는 것이 발전이라거나 멋진 것으로 포장될 수는 없는 성격임은 분명하다.
스윙스는 블랙넛을 비판하는 여론에 대해 힙합엘이(Hiphople.com)와의 인터뷰에서 "Everybody Just Calm the Fxxk Down"이라며 과민반응하지 말라는 듯한 말을 했고, 키디비가 블랙넛을 고소한 일에 대해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런 가사를 쓰는 블랙넛과 그를 방어하는 스윙스는 이런 행위들이 "사회의 금기를 깨뜨리는 멋진 것",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아도취에 빠져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자면 블랙넛의 가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이며, 이것을 방어하는 스윙스의 논리는 인류가 쌓아 온 진보를 깨뜨리고 모두 야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부디 이번 고소건이 두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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