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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달의 소녀 'Hi High' 리뷰
    Review/[Music] Single 2018. 8. 27.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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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번째 미니 앨범 [++] 수록곡

    발매일 : 2018년 8월 20일


    이달의 소녀의 첫 완전체 데뷔곡 'Hi High'를 듣고 뮤직비디오를 보고 나서 한국 사회에서, 특히 대중 문화에 그려지는 '소녀'의 이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았다. 여태껏 대중 문화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도 안 되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없지만, 신체는 성숙해지고 있기 때문에 쉽게 대상화되는 존재라는 이미지를 '소녀'라는 단어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Hi High'는 그 '소녀'의 쓰임새에 매우 부합하는 이미지의 곡이다.

    사실 케이팝이라 불리는 한국 대중 음악 산업에서 여성 아이돌이 이런 식으로 '소녀'의 이미지를 소비해온 것은 손가락 발가락을 다 합쳐도 부족할 만큼 많다. 거기에 그룹 이름에 '소녀'가 들어가는 게 새삼 이달의 소녀가 처음도 아니고 말이다. 만약 '소녀'의 이미지를 대상화하는 것으로 비판받아야 한다면, 지금 당장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걸그룹 중 열에 아홉은 손가락질을 당해도 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Hi High'를 듣다가 굳이 다시 '소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은 이달의 소녀가 햇수로 3년간 쌓아 온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이달의 소녀는 2016년부터 멤버를 순차적으로 한 명씩 공개하며 일정 멤버가 공개되면 그들로 유닛을 구성해 활동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그룹의 이름을 알려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지금보다는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만한 인상적인 순간들이 꽤나 있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달의 소녀가 '소녀'라는 존재를 다루는 방식이었다. 이달의 소녀는 멤버들의 솔로곡을 통해 꾸준히 유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단계의 여성이 느꼈을 법한 다양한 감정과 혼란을 타자의 관점이 아닌 여성 화자의 입장에서 다루었다. 자신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하는 첫 멤버 희진의 'ViViD'로 시작해 "나를 좀 더 사랑할거야"를 외치는 마지막 멤버 올리비아 혜의 'Egoist'로 마무리는 되는 서사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흐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완전체로 결성되는 순간 "남잔 조심 조심", "난 특별하니까/난 예쁜 애니까"처럼 기존의 미디어가 다뤄 온 '소녀'의 이미지에서 한 발도 빗겨 딛지 못하는 퇴보를 선보인다. 거기에 'Hi High'의 뮤직비디오는 한 술 더 떠서 멤버들의 신체를 관음하듯 훑어내린다. 다양한 소품, 색감, 먼저 공개된 멤버들의 카메오 출연 등으로 음악과 영상이 합일된 한 편의 뮤직드라마를 보는 듯했던 기존의 이달의 소녀 뮤직비디오와는 상당히 결이 다른 형태이다. "완전체가 되었을 때 일반 대중에 어필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하는 기획자의 인터뷰를 감안하더라도, 여태까지 보여온 성취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결과물은 꾸준히 이달의 소녀 프로젝트를 따라온 사람에게는 큰 실망을 안긴다.

    그렇다고 'Hi High'가 충분히 매력적인 노래냐하면 그것 또한 그렇지 못하다. 'Hi High'가 타이틀 곡이 된 것은 기존의 걸그룹이 걸어간 길을 답습하는 수준에서 대중성을 확보해 보겠다는 안이한 판단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차라리 리드 싱글로 공개된 'favOriTe'이 타이틀 곡이었다면, 여태까지 가져온 이달의 소녀라는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를 그럴 듯하게 이어가면서 다른 걸그룹과 차별점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성공 여부를 함부로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불공평한 파트 분배 역시 문제점이다. 멤버 12명이 모두 솔로 곡과 앨범, 솔로 뮤직비디오를 가지고 있는 시점에서 몇몇 멤버에게 분량을 몰아주는 선택은 분량이 적은 멤버들의 팬들에게 반발을 살 수 있다(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명색이 이달의 소녀1/3의 메인보컬인데 하슬의 타이틀곡 단독 분량이 3글자라니). 노래가 점점 짧아지는 추세에 후렴구를 합창으로 메웠기 때문에 나눌 수 있는 파트 자체가 몇 없긴 하지만, 그마저도 소위 '푸쉬'하는 멤버에게 지나치게 몰아준 것은 멤버 개개인이 나름의 팬덤을 구축해 온 지난 활동들에 비춰봤을 때 좋은 선택은 아니다.

    아이돌 그룹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아이돌 그룹의 디스코그래피는 일종의 서사로 작용한다. 단순히 앨범을 하나 내서 활동을 마치고 그 다음 앨범을 내는 일의 반복이 아니라 전체를 하나의 큰 스토리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달의 소녀는 그동안 그 작업을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튼실하게 해온 그룹이다. 하지만 가장 큰 분기점이 되었어야 할 완전체의 데뷔곡이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이면서 개인적으로는 실망스럽다. 이제 막 데뷔 앨범을 낸 이달의 소녀가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분기점에서 지금보다는 나은 선택을 하길 기대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도 결코 쉽지 않은 길이었음을 알고 있기에 여전히 할 수 있는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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