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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커>(2019) 리뷰
    Review/[Movie] 2019. 10. 7.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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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에는 영화 내용에 대한 간접적인 스포일러가 담겨 있을 수 있습니다.☆
    '조커'라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상당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가장 유명한 슈퍼 히어로 중 하나인 배트맨의 영원한 숙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2019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하게도 2008년에 개봉한 영화 <다크 나이트>의 기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혼돈과 무질서의 화신이자 목적없는 파괴를 즐기는 순수한 악 그 자체처럼 보였다. 히스 레저의 신들린 연기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해석이 만나 태어난 조커는 전례없는 악역으로 영화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캐릭터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조커는 어디까지나 악당이다. <다크 나이트>에서의 조커가 빛났던 것은 어디까지나 배트맨보다 한 수 위에서 배트맨을 농락하며 배트맨을 고뇌와 시련에 빠지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크 나이트>의 조커에게 압도되었던 것은, 관객이 배트맨의 시선으로 영화를 따라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 근본없는 악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과연 물리칠 방법이 있기는 한걸까'라는 배트맨의 고뇌에 이입해서 바라봤기에 조커는 그만큼 파괴력을 가질 수 있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2019년의 <조커>를 보며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에 휩싸였다. 다만 이는 조커라는 캐릭터가 지닌 힘이라기보다는, 조커라는 캐릭터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우려고 했던 제작자에 의해 촉발된 의문이다. 영화를 본다는 것, 혹은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는 것이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었다. 영화가 중후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그에 대한 개인적인 답을 서서히 찾아갔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 영화를 재미있게 본다는 것은,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면서 거기에 공감하는 감정적인 공진을 나누는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조커는 매우 볼품없고 재미없는 영화이다.

    영화라는 매체의 서술 방식을 소설에 대입해본다면, 일반적으로는 3인칭의 관찰자가 되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간주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당연히 그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관객은 그 중요 인물에게 몰입하며 영화를 즐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처음부터 철저하게 조커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리고 관객이 거기서 탈출할 여지를 거의 주지 않는다. 이야기는 전반부를 지나 중반부에 들어갈 때까지 아서 플렉이 얼마나 많은 삶의 고난을 겪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서는 정신적인 질병으로 인해 고통받고, 직장에서 푸대접 받으며,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은 상황에 처해있다. 거기에 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려 하지만 불쑥불쑥 터져 나오는 웃음 때문에 그마저도 어려움을 겪는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영화와 특출나게 다를 것이 없다.


    문제는 아서 플렉이 이러한 고난을 극복하는 방식이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것에 있다. 결국 이는 조커라는 악당 캐릭터가 영화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진행이다. 그리고 이미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에게 감정이 이입된 관객을 설득시키기 위해서, 아서 플렉은 더욱 궁지로 몰린다. 어줍잖은 고난을 겪은 뒤 그 해결 방식으로 세상의 윤리를 파괴하는 존재로 거듭난다면, 그 몰입에서 탈출할 관객이 많아지고 더불어 조커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가치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아서 플렉은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비웃음거리가 되고, 결국 자신이 유일하게 의지하던 가족마저 더 이상 자신의 안식처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서 플렉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살인을 저지른 이후 아서 플렉의 감정 상태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나는 영화에서부터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아서가 심리적 안정을 찾았음을 묘사하는 과정은 이 영화에서 춤으로 표현되는데, 이로 인해 아서 플렉이 저지른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은 낭만적으로 승화되어 묘사되기 시작한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감정적 공진을 느끼지 못하고 탈출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아서 플렉의 욕망은 일견 자연스러운 듯 보이지만, 사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욕망을 완전하게 실현할 환경이라는 것은 주어지지 않는다. 욕망과 현실 사이를 조율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갈 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자 하나의 자아로서 그 가치를 갖는다. 하지만 아서 플렉은 자신의 욕망이 좌절되는 것에만 지나치게 집중하고, 영화는 그런 아서 플렉에게 온갖 시련을 내리면서 관객에게 아서 플렉의 괴로움에 몰입할 것을 강요한다. 그렇기에 그 모든 분노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합리화하는 '춤'이라는 장치는, 이미 아서 플렉의 욕망이 지나치게 비타협적이고 허황됐다고 판단한 관객, 개인적인 의견으로 한정하자면 나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물론 영화가 반드시 사회적으로 건강한 메시지를 던져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현실에 안착하지 못한 아웃사이더가 자신에게 주어진 제약 조건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것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영화란 현실을 반영한 예술이고,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존재들이 살아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러한 존재가 폭력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그것을 계기로 비로소 타인에게 인정받으며 자아를 성취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과연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느냐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엔 이런 존재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그들을 보듬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걸까? 혹은 이런 존재가 탄생하지 않도록 사회 시스템이 적절히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기엔 '조커'라는 캐릭터가 보여 준 파괴와 혼돈은 사회적으로 납득 가능한 범위를 아득하게 넘어섰고, 영화는 조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따라서 나에게 조커는 왜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위적인 피학적 요소들만을 잔뜩 몰아넣은 재미없고 볼품없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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