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틴 마블>(2019) 리뷰Review/[Movie] 2019. 3. 7. 11:46반응형
본 글은 가급적 주의를 기울이나 보는 이에 따라 <캡틴 마블> 뿐 아니라 여러 다양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라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캡틴 마블'이란 존재는 이래저래 미국의 슈퍼 히어로 코믹스에 익숙치 않은 한국인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블 스튜디오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흥행, 충격적 결말, 그리고 (본인은 한 컷도 등장하지 않은)쿠키 영상에서의 존재감으로 단숨에 '캡틴 마블'을 관심의 중심으로 옮겨 놓는 데에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작품 외적으로도 다양한 논란에 시달리며 오히려 <캡틴 마블>의 존재감은 날로 높아져만 갔다.
드디어 뚜껑이 열린 <캡틴 마블>은 아주 간단하게 말하자면 수많은 히어로 영화 1편과 크게 궤를 달리 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여러 고난을 겪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며 히어로로 각성하는 과정. 이는 2008년 개봉한 <아이언맨>부터 가장 최근의 마블의 슈퍼 히어로 솔로 무비였던 <블랙 팬서>까지 일관되게 적용된 것이다. 다만 <캡틴 마블>에서는 '잃어버린 기억 찾기'라는 요소가 활용되는데, 사실 그 비밀이 풀리기 시작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다른 슈퍼 히어로 솔로 무비와 크게 변별점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캡틴 마블>은 그것을 다루는 과정에서 단 한 마디의 대사로 존재감을 갖게 된다. <캡틴 마블>의 주인공인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 분)는 어릴 때부터 성장할 때까지, 심지어 히어로로 각성한 이후에도 "넌 안 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듣는다. 그 말들은 같은 행동을 하거나 같은 위치에 있는 남성에게는 향하지 않는 말들이다. 끊임없이 우리의 파이를 너에게 나눠줘야 할 이유를 증명하라는 요구에 캡틴 마블은 "증명할 필요 없다."고 답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역시 다른 남성들처럼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실수나 잘못을 저질러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이 영화에는 담겨 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각각 지구를 구한다는 명목, 친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친 사고들만 생각해봐도 그렇다. 캡틴 마블 역시 아직은 부족하고 좌충우돌하는 면들이 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한 각성을 하고 성장해가는 과정을 착실히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뻔한 슈퍼 히어로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지난 10년간 여성 히어로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뻔한 서사를 '캡틴 마블'이라는 캐릭터가 지니게 되는 것 자체가 이 영화가 지닌 힘이다.
<캡틴 마블>은 또 여성으로부터 여성에게 계승되는 동기 부여를 다루고 있다. 그동안의 슈퍼 히어로 영화들이 남성으로부터 남성에게 대물림되는 동기 부여를 중심으로 다뤘다. <아이언맨2>에서는 토니 스타크가 아버지가 못 다 이룬 업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달성한 토니 스타크의 업적은 다시 <스파이더맨: 홈커밍>을 통해 스파이더맨에게 계승된다. 왕권 승계 문제를 다룬 <토르>시리즈나 <블랙 팬서>는 말할 것도 없고, <앤트맨>에서도 스콧 랭은 행크 핌 박사의 유지를 계승한다.
이런 구도는 <캡틴 마블>에서 로슨 박사에게서부터 캡틴 마블에게로, 그리고 캡틴 마블에게서부터 다시 마리아의 딸에게로 이어지는 식으로 이 영화에 그려진다. 그리고 이는 영화를 보는 어린 여성들에게도 전달될 것이다. 앞서 나열한 남성 히어로들의 승계 구도가 영화를 보는 어린 남성들에게 영향을 끼쳤던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는 <캡틴 마블>이 단순히 여성을 주연으로 한 슈퍼 히어로 영화로서가 아니라 영화 바깥에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영향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아쉬운 점도 있다. 이 영화를 보고 "페미니즘 요소가 적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론 <캡틴 마블>이 페미니즘적 메시지를 너무 납작하고 직접적으로 던진 것 같아서 아쉽다. 다만 어디까지나 오락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눌러서 넣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
또 캐럴 댄버스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은 앞부분에 힌트를 너무 많이 던졌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후반부의 액션씬은 스케일이 큰 액션을 잘 묘사하지 못하는 마블답게 임팩트가 다소 약한 면도 있다. 거기에 오랜만에 MCU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되어 기대를 했던 필 콜슨(클라크 그렉 분)과 로난(리 페이스 분)이 사실상 카메오 정도의 역할만 하는 것도 MCU의 팬으로서는 아쉬운 점이다.
<캡틴 마블>은 가장 독특한 MCU 영화 중 하나이다. 세계관이 정립되기 시작한 지 11년만에 나온 여성 히어로 단독 영화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 영화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 이 영화를 독특하게 만들었고, <캡틴 마블>은 그 맥락에 위축되지 않았으며, 다시 이 영화를 둘러싼 사회가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기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바라보는 것은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만 겪을 수 있는 체험이라고 생각한다. <캡틴 마블>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본인의 시각과 다른 이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선사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영화를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p.s.1 브리 라슨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한 캡틴 마블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 그리고 닉 퓨리의 아픈 과거가 드디어 밝혀진다.
p.s.2 쿠키 영상은 2개.
반응형'Review > [Mov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커>(2019) 리뷰 (0) 2019.10.07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2019) 리뷰 (0) 2019.07.11 <기묘한 가족> (2019) (0) 2019.02.18 <아쿠아맨> (2018) 리뷰 (0) 2018.12.31 <강철비> (2017) (0) 2017.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