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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017)Review/[Movie] 2017. 6. 20. 23:18반응형
※ 주 의 ※ 읽으시는 분에 따라 스포일러로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하루>는 같은 시간이 반복된다는 설정의 루프물이다. 사고로 인해 딸의 죽음을 목격한 김준영(김명민 분)과 아내의 죽음을 목격한 이민철(변요한 분)이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어떻게든 딸과 아내의 죽음을 막아보려고 애쓰는 이야기이다. <하루>는 이 설정을 익숙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기억할 만한 단서 몇 개를 던져 준 후 반복되는 시간에서 다시 그 장면이 되풀이되는 방식이다. 어찌 보면 진부해보일 수 있지만, 덕분에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없이 속도감 있게 전반부를 밀어붙인다.
전체적인 진행 역시 마찬가지이다. 극 초반의 몇 가지 에피소드들은 주인공 중 한 명인 김준영이라는 사람이 어떤 성격인지를 알려주는 단서가 된다. 하지만 김준영이라는 인물의 특성이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의료 봉사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라는 설정은 간간이 이야기 전개에 양념으로 작용할 뿐, 사고로 죽는 딸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라는 점만 있다면 충분하다. 때문에 김준영은 같은 시간이 반복되는 상황 자체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딸을 구하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 영화의 또다른 주인공인 이민철 역시 마찬가지이다. 경제 사정이 썩 좋지 않은 청년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아내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에 이리저리 방법을 강구하는 사람일 뿐이다. 김준영이 조금 더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민철은 약간 더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는 특징은 있지만 정도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인물 설정이 다소 부실해보이기는 해도 대부분의 이야기가 시간이 반복된다는 상황에 의해 진행된다. 상황을 중시하다 캐릭터가 빈약해진 건지, 캐릭터가 빈약해서 상황을 중시한 건지는 몰라도 크게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캐릭터가 약하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도 평이한 수준에 머문다. 강렬하고 개성있는 연기를 많이 선보인 김명민은 오히려 이런 캐릭터에서 연기력이 잘 묻어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결국 <하루>는 등장 인물의 내적 고뇌를 걷어내는 대신 빠른 전개를 얻었다.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들이 이러한 지점을 더 부각시킨다. 1시간 30분이라는 근래 상업 영화들에 비하면 짧은 편인 러닝타임 역시 군더더기없이 이야기의 흐름에 집중한 덕이라고 생각한다. 궁금해하거나 지루해 할 틈없이 이야기들은 의문점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다소 진부할 수 있는 루프물이라는 설정을 돌파하는 해결책으로 괜찮은 방법같아 보인다.
하지만 결국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상적이지 않은 세계에서의 비현실적인 사태는 필연적으로 왜 이런 일이 생겼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한다. 전반부에서 캐릭터들은 이런 고뇌를 하지 않고 오로지 가족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보는 사람 역시 속도감 있는 내용을 따라잡느라 이 부분에 대한 의문을 잊고 있지만, 결국 이 부분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결말에 이르기 어렵다.
결말부의 내용 자체만 놓고 본다면 실타래를 나쁘지 않게 푼 것 같긴 한데, 다소 진부하고 감상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는 감상은 있다. 특히 앞부분에서 걷어낸 군더더기가 후반부에 와서 붙은 듯 굳이 필요없는 장면들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특히 상황을 극단으로 몰기 위해서인지 후반부의 격렬한 감정 다툼은 등장인물들이 할 이야기를 똑바로 하지 않아 생기는 오해라는 생각이 들면서 보는 사람으로서 다소 맥이 풀렸다. 결국 '차카게 살자' 정도의 교훈을 얻기 위해 주인공들이 이렇게 개고생을 했나 싶다.
흥미로운 설정을 가져와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설정 아래에서 벌어진 이야기를 잘 매듭짓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매듭을 짓는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느냐에 따라 이야기꾼의 역량이 결정된다고 보는데, <하루>는 그 지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긴 어렵다. 때문에 루프물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두고도 썩 인상적인 작품이 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속도감 있는 전개 덕에 긴장을 푼 상태로 보기엔 꽤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착하게 살자'말고 다른 교훈도 있다.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너무 크게 듣지 말자'라든지 '아무리 싸웠어도 전화는 받아주자'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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