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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쿠아맨> (2018) 리뷰
    Review/[Movie] 2018. 12. 31.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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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가 하는 얘기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DC에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대항해 구축한 영화의 세계관은 그동안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단독 영화라고 할 수 있는 <맨 오브 스틸>과 <원더우먼>이 괜찮은 평가를 받았지만, 이 영화들마저도 필연적으로 비교 대상이 되는 마블의 영화들과 견주었을 때 더 뛰어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초반에 애매모호한 평가를 받다가 팀업 무비이자 세계관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어벤져스>로 열풍을 시작한 마블에 비해, <어벤져스>와 비슷한 역할을 해야 했던 <저스티스 리그>가 최악의 평과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 DC는 더욱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도 <저스티스 리그>를 본 이후 DC의 영화들을 볼 이유가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운 정도 정이라고, <맨 오브 스틸>부터의 DC 영화들을 한 편도 빠짐없이 극장에서 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아쿠아맨>을 봐야 한다는 의미없는 의무감에 이끌려 극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시큰둥한 마음으로 본 <아쿠아맨>은 다행히 매우 재미있었다.

    영화의 줄거리를 아주 짧게 줄이면 이렇다. 해저 왕국의 여왕과 지상의 등대지기 사이에서 태어난 아쿠아맨, 아서 커리(제이슨 모모아 분)가 해저 왕국을 통일하고 지상 세계의 정복까지 꿈꾸는 이부 동생 옴(패트릭 윌슨 분)을 막기 위해 전설 속의 무기를 찾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 이야기의 구성은 매우 흔하고 뻔하다. 당연히 중요한 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수많은 슈퍼 히어로 무비에서 결국 히어로가 이기고 악당이 질 것을 예상하지만 또 보러 가지 않는가. <아쿠아맨>은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꽤 괜찮은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해저와 지상을 넘나들며 선보이는 세계의 모습이 눈을 즐겁게 한다. 특히 7개로 나뉘어진 것으로 묘사되는 해저 왕국은 제각기 색다른 매력을 뽐내며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기에 다양한 볼거리들이 넘쳐나는 배경을 단순히 전시하는 과정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마치 여러 편의 영화를 엮어 놓은 듯한 연출이 <아쿠아맨>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이야기의 주 무대가 되는 아틀란티스는 상상 속 해저 왕국의 모습을 현란한 색채로 묘사하고 있으며, 갑각류들이 주로 모여 사는 브라인에서의 전쟁씬은 마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에 등장하는 대전투를 연상시킨다. 이미 사라져 사막 속에 파묻힌 것으로 등장하는 데저터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나 <미이라>시리즈를 떠올릴 것이다. 지상 세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탈리아의 모습도 해저 왕국들 못지 않게 아름답게 묘사되며 이 지역의 특색을 이용해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펼쳐지는 액션은 007시리즈 같은 한 편의 첩보물을 떠오르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심해에 살아서 '퇴화'된 것으로 묘사되는 트렌치 종족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빛이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펼쳐지는 심해 공포물을 연상시키고 한 편으로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트렌치들은 <새벽의 저주>에서 좀비들이 떼로 달려드는 장면이 떠오르게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겠지만, 마지막 전투 씬에서는 <고질라>나 <퍼시픽 림>같은 괴수물의 모습도 스쳐지나간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한 군데에 섞어 놓았기 때문에 영화가 자칫 산만해지는 건 아닐까하는 우려도 있을 수 있으나 다행히 그렇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상술했듯 이야기의 구조 자체가 크게 복잡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DC 영화들은 내용면에서 복잡한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 내용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어설프게 갈무리를 짓는 경우가 많았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대슈>)의 전설적으로 회자되는 '마사를 구해야 해'라든지,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지구를 멸망시킬 것만 같던 인챈트리스를 폭탄 한 방에 날려버린다든지 하는 장면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아쿠아맨>은 '자발적으로 몰려난 아웃사이더가 왕위를 차지한다.'는 단순하지만 익숙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고, 덕분에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듯한 장면들이 지나감에도 몰입이 어렵지 않다. 뚜렷한 선택과 집중의 결과인 셈이다.

     <아쿠아맨>의 장점은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악당에게 뚜렷한 목적과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데어데블> 시즌 3를 보면서 확실하게 느낀 점이지만, 악당의 캐릭터가 얼마나 뚜렷하고 확실하게 그려지느냐는 슈퍼 히어로 이야기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아쿠아맨>에 대적하는 악당으로는 해적인 블랙 만타(야히아 압둘 마틴 2세 분)와 지상 세계와의 전쟁을 원하는 아틀란티스의 왕 옴(패트릭 윌슨 분)이 등장하는데, 이들에게는 각각 아쿠아맨과 대적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블랙 만타에게는 아쿠아맨으로 인해 아버지를 잃었다는 동기가, 옴에게는 지상 세계의 사람들이 바다를 오염시켰고 거기에 대적해야 한다는 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자꾸 비교하게 되지만 <배대슈>에서 '전지전능한 자가 악하지 않을 리 없다.'는 모호한 동기를 지닌 렉스 루터나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지구를 멸망시키는 것 외에 별다른 이유가 없어 보이는 인챈트리스에 비했을 때 확실한 목적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이들은 아쿠아맨을 공격해야 할 이유가, 아쿠아맨에게는 이들을 막아야 할 이유가 성립된다. 이는 이야기를 끝까지 긴장감 있게 끌고 가는 힘이 된다. 특히 블랙 만타가 아버지를 잃게 되는 초반부 장면은 블랙 만타가 슈퍼 히어로이고 아쿠아맨이 악당이라고 보는 편이 오히려 익숙하도록 연출했는데, 이는 블랙 만타의 동기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이자 <아쿠아맨>의 속편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아쿠아맨과 함께 등장하는 메라(엠버 허드 분)의 존재감 역시 영화의 중요한 키포인트이다. 아쿠아맨 못지 않은 비중과 활약으로 영화의 큰 축을 담당하는 메라는 아쿠아맨에게 확실한 동기를 부여하는 존재이자 아쿠아맨이 난관을 겪을 때마다 도움을 주는 해결사로서의 역할을 한다. 메라가 왜 아쿠아맨을 돕는지에 대한 이유가 쉽게 와닿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지만, 메라의 역할을 생각한다면 아쿠아맨과 메라의 팀업 무비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한다. <앤트맨>의 속편이 <앤트맨과 와스프>였던 것처럼 <아쿠아맨>의 속편이 <아쿠아맨과 메라>로 나올 순 없을까하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후속편에서 메라가 맡을 역할과 이야기가 훨씬 무궁무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당연히 단독 영화이면 더 좋다.)

    <아쿠아맨>은 오락 영화로서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덕분에 흥행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고 있는데, 연이은 실패로 무너져 가던 DC의 세계관을 다시 일으키는 데에 <아쿠아맨>의 성공이 중요한 분기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부디 이 성공에 자만하지 말고 남은 시리즈들을 더욱 탄탄하게 구성하여 이후 계획된 영화들도 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마블이나 DC 어느 한 쪽 편을 드는 것은 아니고, 어쨌든 볼 만한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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