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월간 윤종신은 윤종신이라는 뮤지션이 매달 한 곡씩 노래를 발표한다는 파격적인 형식의 프로젝트였다. 처음 시작할 때는 얼마나 지속될지 의문을 가지는 이도 많았지만, 햇수로 8년째가 된 2017년 현재까지 몇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빠짐없이 실천되고 있다.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 뜸한 앨범 발매와 활발한 예능 활동으로 인해 예능인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했던 윤종신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잠시 잃어버렸던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를 회복했고 덕분에 제작자로의 변신 또한 가능하게 했다.
월간 윤종신은 윤종신이란 뮤지션을 상징하는 브랜드가 되었으며, 윤종신의 팬들에게는 한 달에 한 번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큰 선물이다. 다만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곡들이 쌓여 가면서 사람들의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 간 곡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이번 글을 통해, 다소 알려지진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했고 여전히 즐겨듣는 곡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물론 수많은 곡 중 5곡을 꼽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이 곡들만큼은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골라보았다.
1. 그리움 축제 (2012년 2월호)
2012년 상반기 '월간 윤종신'은 윤종신이 프로듀서로만 참여하고 여성 가수들이 목소리를 채우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1월호의 장재인부터 시작해 호란, 김완선, 조원선, 박정현, 정인까지 이어졌던 상반기의 곡들은 어느 하나 빼놓을 것없이 좋았다. 그 중 가장 좋았던 노래는 호란이 참여한 2월호 '그리움 축제'이다.
혼자 있는 쓸쓸한 방 안에서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그리움과 추억들이 몰려드는 상황을 '축제'라는 말로 표현함으로써 가슴 아픈 심정보다는 아련함을 강조하는 가사가 일품. 풋풋했던 첫 연애, 첫사랑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순수했던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노래이다. 고음을 폭발시키기보다는 담담하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호란의 음색도 곡의 분위기에 매우 적합하다. 완성된 결과물로서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프로듀서 윤종신의 능력이 빛을 발한 곡이라 할 수 있다.
2. 몰린 (2012년 9월호)
2012년 상반기 월간 윤종신이 목소리를 다른 가수들에게 내줬다면 2012년 하반기의 월간 윤종신은 프로듀서의 자리를 다른 뮤지션들에게 내준다. 윤종신의 오랜 파트너인 015B와 하림, 한 때 노총각 4인방으로 불리며 예능을 함께 하기도 했던 김현철과 윤상, 그리고 윤종신의 원조 음악 노예 유희열까지, 이름만 들어도 놀라울 만큼 엄청난 라인업을 자랑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이규호와 함께 한 9월호 '몰린'이 자리하고 있다.
윤종신과 이규호는 파격적인 가사와 여름에 어울리는 발랄명랑한 편곡으로 나름의 인기를 끌었던 '팥빙수'에서 함께 작업한 적이 있다. 다만 '팥빙수'가 윤종신에게나 이규호에게나 의외성을 드러낸 결합이었다면, '몰린'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만남에 가깝다. 데뷔 초 015B의 '텅 빈 거리에서'를 불렀던 시절에 비하면 많이 굵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윤종신의 미성은 아름답고, 윤종신과는 또다른 감성을 자랑하는 이규호의 시적인 가사 역시 곡과 매우 잘 어울린다. 9월호답게 너무 쓸쓸하지 않으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담아낸, 가을에 듣기 딱 좋은 노래이다.
3.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 (2014년 6월호)
개인적으로 윤종신의 사랑 노래 가사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은 '짝사랑'을 주제로 한 곡들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상대에게 표현하지 못할 때의 괴로움과 그 사람 앞에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감정을 표현함에 있어 사실 윤종신보다 뛰어난 작사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짝사랑 가사의 레전드라 쓰고 전설이라 읽는 8집 수록곡 'Annie', 논스톱 4의 OST였던 '고백을 앞두고', 월간 윤종신 2011년 9월호 '니 생각' 등 짝사랑을 주제로 한 윤종신의 좋은 곡들이 많지만, 2014년 6월호인 '왠지 그럼 안될 것 같아' 역시 매력적인 곡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가수 켈리가 노래를 맡았기에 한국어 발음이 불명확하다는 점은 사실 노래를 감상하는 데에 분명히 방해가 되긴 하지만, 텍스트로 쓰여진 가사를 읽으며 노래를 들으면 보컬의 감정 표현은 잘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하루종일 상대를 생각하면서도 다가서면 안될 것 같은 마음을 담은 가사에 기타와 피아노로만 이루어진 담백한 곡은 매우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물론 내가 짝사랑을 많이 해봐서 이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다. 믿어주세요.
4. 고요 (2014년 10월호)
바로 위에서 윤종신의 가사 중 짝사랑의 대한 가사를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훼이크였다. 윤종신하면 누가 뭐래도 이별가사다. 최근 몇 년간 윤종신의 이별 가사는 이별하는 그 순간이나 직후보다는 이별하고 꽤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돌아보며 그 때의 감정을 떠올리는 식의 가사들이 조명을 받은 적이 많았다. 제일 처음 소개한 '그리움 축제' 역시 그런 류의 가사였다.
하지만 '고요'는 이별하는 그 순간, 길게 봐줘야 몇 분에 불과한 그 시간을 담아냈다. '그대 일어나면 이별이 시작돼요/이렇게 가만있으면 아직 애인이죠', '내가 일어나서 이별이 끝나가요' 같은 가사는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느끼고 싶어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찌질함의 끝이다. 그리고 이런 가사를 써낼 수 있는 건 윤종신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1년 6월호 '말꼬리'에 이어 다시 한 번 정준일과 만난 이 곡에서 담담하게 시작해서 애절하게 떨리는 정준일의 보컬이 마치 이 곡의 화자 그 자체인 듯한 인상까지 준다. 역시 이별 노래는 윤종신이다.
5. 뱀파이어라도 좋아 (2015년 5월호)
한 달에 한 곡씩 내는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의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매달 곡을 내는 시스템상 완성도가 들쭉날쭉할 수 있고, 청자들 역시 그 점을 충분히 감안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지나치게 실험적인 곡이 나온다 하더라도 '아 이번 달은 이런 시도를 했구나'하며 이해해주는 경우가 많다.
평범한 발라드를 벗어나서 했던 여러 시도 중 가장 인상적인 결과물은 2015년 5월호 '뱀파이어라도 좋아'이다. 2015년 월간 윤종신은 영화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어진 곡들로 이루어졌는데, 이 곡은 영화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를 보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뱀파이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독특하고 참신하지만, 간절한 사랑을 하는 사람의 마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가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 거기에 독특한 질감의 사운드와 다양한 효과음이 곳곳에 배치된 편곡이 비현실적인 가사에 잘 어울린다.
윤종신이란 뮤지션은 정형화된 틀 속에 머물러있기 보다는 한 번씩 튀어나와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뱀파이어라도 좋아'는 그 튀어나온 것들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월간 윤종신을 통해 윤종신은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며 데뷔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계속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으며 그것을 증명해주는 곡들 중 하나이다.